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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Nov 05. 2022

접촉과 경청,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

London Life

접촉과 경청,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행보를 보면서 의아한 것은 접촉과 경청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어디를 다녀왔다며 언론에 나오는 사진은 말하닌 장면이거나 봉사하는 장면이다. 봉사 장면은 때로는 진정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우리가 리더나 리더 부인에게 바라는 것은 급식 봉사와 설거지가 아니다. 접촉과 경청이다.


대통령과 영부인 방문지를 모든 국민이 알 필요는 없어도 방문기관 관련자와 인근 주민은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과 영부인을 보기 위해 와야 하며, 같이 어울려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눠야 한다.


접촉과 경청이 왜 없었겠는가? 대통령과 영부인이 서민적 행보를 하는 과정에서 그런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우리는 좀처럼 그런 면을 발견하기 어렵다. 메시지를 관리 전달하는 측에서 접촉과 경청의 의미를 경시하기 때문이거나 스스로 위축되었기 때문이거나 경호에 지나치게 방점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 왕세자 윌리엄과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이 영국 동북부 해안가인 스카보로에 갔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원도 양양 지역이다. 케이트 미들턴은 정장을 잘 차려입었다. 460 파운드 코트를 입었고, 295 파운드 핸드백을 들었고, 60 파운드 벨트를 맸다. 브랜드를 알 수 없는 하이힐도 낙타색으로 깔맞춤 했다.


지나가는 길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주민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그들에게 다가갔다. 포장길 옆에 풀흙길이 있었고, 통제 라인은 그 넘어 있었다. 주민들에게 다가가려면 미끌미끌하고 질척질척한 풀흙길을 하이힐을 신고 넘어가야 했는데, 그녀는 그걸 마다하지 않았다.



방문지에 가서는 대여섯 명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겠지만, 언론에 나온 사진은 하나 같이 듣는 모습뿐이었다.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지만, 실제로 많이 들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한 팀만 만나도 충분했지만, 한 기관에서 여러 팀을 만났다. 이게 바로 경청이다. 왕실이 장수하는 비결이다.


나이 든 할아버지와 포즈를 취하는 사진도 공개되었다. 케이트 미들턴은 할아버지 어깨에 손을 얹었고, 할아버지는 미들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의전 룰에 맞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모습이 놀랍도록 자연스러웠다. 이게 바로 접촉이다. 왕실이 천년이 지나도 80%의 지지를 받는 이유다.


영국인이 리즈 트러스 전임 총리를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접촉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즈 트러스는 서민 출신이지만 정치인이 된 이후로는 보통 사람들과 허물없는 접촉을 보여주지 못했다. 접촉이 없는 사람은 경청도 부족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녀는 독불장군 하다가 44일 만에 물러났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과 접촉한 사진이 있다. 기사에는 유족을 위로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위로는 대화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있어야 했다. 테이블이 없었다면 땅바닥에 격식 없이 앉아도 좋았다. 위로는 ‘명복을 빈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위로는 상대방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해서 듣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구절절한 사연을 실제로 경청해야 했다.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나지 않을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경청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마스크는 쓰지 말았어야 했다. 접촉과 경청은 일상에서 훨씬 더 많이 일어나야 한다.


왕과 대통령은 다르고, 왕세자와 대통령도 다르다. 영부인과 왕세자비는  다르다. 대통령과 영부인은 왕실보다  책임이 크고,  정치적이다.  조심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천년의 통치 비법이 고작 ‘접촉과 경청’이라고 한다면, 한 번쯤 따라해 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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