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비밀도 동침할 상대가 있어야 누설하지!
차기 제임스 본드에 톰 하디가 언급된다고 하니까 어느 페친이 ‘하디가 그것을 할까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007을 공상적 캐릭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제임스 본드 위상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왕과 총리 다음으로 아마 007 일지도 모른다. 해리 포터도 007에 육박하지 못한다. 총리 자리를 거부할 정치인이 없듯이 007 배역을 거부할 영국 배우는 없다.
매주 교회를 갈 때면 템즈강에 있는 MI6 건물을 지난다. 그제 주일에는 ‘Thank God It’s Monday’의 저자 마크 그린 목사의 설교가 있었다. 그는 설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영국에서 자신이 제임스 본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제임스 본드는 잘 생겼고, 신사답다. 그는 강인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그는 사려 깊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는 섹시하고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삼손처럼 동침녀에게 비밀을 누설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는 늘 성공한다.’
많은 영국인이 제임스 본드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못 생겼고, 신사답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나약하고 어려움 앞에 좌절한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쫓아 우왕좌왕한다. 우리는 섹시하지 못하고 적과의 동침은커녕 와이프에게도 까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비밀도 동침할 상대가 있어야 누설하지! 우리는 늘 실패한다.
007 제임스 본드가 성공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라고 한다. well trained, well briefed, well commissioned, well resourced, well supported이기 때문이다. 그는 잘 훈련받고, 상황을 잘 브리핑받고, 임무가 정확히 부여되고, 좋은 자원을 받고, 좋은 팀으로부터 훌륭한 지원을 받는다. 우리는 대게 그렇지 못하다.
우리 일은 자그마한 일이니 그렇지 못하더라도 꾸역꾸역 해 나갈 수 있다. 실패해도 큰 문제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의 외교와 전쟁은 다르다. 그것은 007적인 여건에서 이뤄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을 본다. 그가 잘 trained 되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력이나 물자 지원은 대한민국인데 잘 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briefed 되고 commissioned 되고 있는지는 의아할 때가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다. 전쟁 1년을 맞이한 상황에서도 여전한 푸틴빠와 러시아빠가 있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더 많이 죽었는가 러시아 군인이 더 많이 죽었는가를 가지고 러시아의 우세를 이야기하는 답답한 사람도 있다. 전쟁이야말로 trained, briefed, commissioned, resourced, supported가 중요하다. 러시아군이 그 다섯 개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잘 되고 있는 것이 있는지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