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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02. 2023

유명 골프코스가 가져다준 비극과 희극

London Life

월드 탑 100 골프코스가 가져다준 비극과 희극

  

  

골프를 여러 사람과 어울려 치다 보면 정작 연회비를 내놓은 자신의 클럽은 갈 기회가 적어진다. 좋아하는 자기 클럽 놔두고, 덜 좋아하는 남의 클럽에 가서 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선언했다. ‘이제 나는 월드 탑 100 골프코스 아니면, 부르지 마세요!’ 내 클럽에서 조용히 클럽 멤버와 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던 중에 연락이 왔다. ‘웨일스에 있는 펜나드(Pennard Golf Course)에 가자!’ 찾아보니 어느 해에 월드 탑 98위에 랭크된 적이 있는 코스였다. 거부할 명분이 없어서, 내가 운전하지 않는 조건으로 가겠다고 했다. 런던에서 4시간 걸리는 웨일스의 스완지에 있다.


새벽 세시에 일어났다. 동반자가 운전을 하고 나는 보조석에 앉았다. 차는 내 차였지만, 파일럿 어시스트(pilot assist) 기능으로 가면, 누가 운전하나 마찬가지였다. 7시 40분과 1시 40분에 두 번을 티오프하는 강행군이었다.


보조석에 있는 나는 자면서 여유 있게 갔다. 그러다가 차가 고속도로에서 멈춰 서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운전자가 연료 부족 사인을 제 때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달린 것이다. 자신의 차는 엠티(empty) 메시지가 나오고도 15마일은 가기 때문에 이 차도 그럴 줄 알았다는 것이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이곳저곳에 전화했다. 모두 자신들의 커버리지를 벗어나거나 30분 안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고속도로에 서서 지나가는 차를 세우기로 했다. 5분이 지나도 아무 차도 정차하지 않았다. ‘웨일스는 좀 빡빡한가?’ 생각하면서 더욱 가열차게 손을 흔들었다. 차가 하나 급정거를 했고, 무슨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기름이 떨어졌으니 가장 가까운 주요소까지만 태워다 줄 수 있어?‘ ’시간이 많지는 않은데, 할 수 없지! 타!‘ 그렇게 나는 낯선 차에 탔다. 차에 타고 나서야 보조석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긴박했다. 두 사람은 꽤나 건장하게 생겼다. 둘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고, 차는 조금 거칠어 보이는 공장지대로 들어갔다. 순간 쫄렸다.


우여곡절 끝에 주요소에 도착하고 나는 주요소에서 5리터짜리 휘발유통을 사서 휘발유를 담았다. 그걸 지켜보던 운전자는 내게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물었다. ’우버를 불러야지! 네가 시간이 없다니 미안하지만, 혹시 그래도 나를 그 자리까지 다시 태워다 줄 수 있어? 나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네! 대신 100파운드 줄게!‘ 그는 조금 생각하더니 다시 차에 타라고 했다. 돈 때문에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았고, 외지인인 내가 딱해 보이는 것 같았다.


차로 와보니 트래픽 컨트롤러들이 도착해서 위험을 알리는 신호대를 설치하고, 깜박깜박거리고 요란한 상황이었다. 동반자에게 휘발유통을 넘겨주고, 태워다 준 차에게 돌아가려는데, 그 차는 이미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현금이 없으니 계좌로 부쳐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돈 때문에 도와준 것은 아니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도와주라고 말하고는 떠나려고 했다.


급하게 다시 그들을 불러 세워, 어디 출신인지 물었다. 스리랑카 출신이라고 말했다. 나는 불교신자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신들은 기독교신자라고 말했다. 새벽같이 웨일스로 떠나 티타임에 쫓기면서 온갖 쇼를 다 했다. 그 와중에 내가 가진 편견의 여러 조각이 한 번에 깨졌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겠다고 약속하고 그들을 떠나보냈다. 트래픽 컨트롤러와도 인사하고 속도를 냈다. 티오프 시간 3분 전에 극적으로 골프코스에 도착했다. 옥스퍼드에서 온 다른 동반자는 우리보다 1분 늦은 2분 전에 도착했다.



펜나드 골프코스는 참으로 독특한 곳이었다. 대부분의 링크스 골프코스는 해변의 평지에 있는데 반해 이곳은 높낮이가 있고, 언덕과 계곡이 있다. 더욱 특별한 것은 그린 주변에 전기선이 있는 점이다. 양떼가 그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설치한 것이다. 즉 이곳은 양떼가 페어웨이를 관리하는 원초적 형태의 링크스 코스다.


잔디는 영국의 링크스 골프코스를 대표하는 페스큐(Fescue) 잔디였다. 바람, 비와 추위에 강한 페스큐는 여름의 고온에 약하다. 지난여름 고온에 페어웨이가 상한 것이 아직도 복구되지 못해서 페어웨이 상태는 아주 나빴다. 양떼가 잔디를 뜯어먹을 수는 있으나 잔디를 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쓰루더그린(페어웨이와 러프)에는 스프링클러가 없기 때문에 고온의 가뭄을 버틸 재간이 원래 없다.


골프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펜나드의 50년 넘는 회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페스큐 잔디의 특성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해 주었다. 세인트 앤드루스는 페어웨이, 러프, 와일드 러프, 그린, 티샷박스가 모두 한 가지 종류의 페스큐 잔디라고 한다. 그러나 펜나드의 그린, 티샷박스, 쓰루더 그린은 다른 종류의 페스큐 잔디다. ‘페스큐 잔디도 여러 종류가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페스큐 잔디만도 30여 종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골프코스의 잔디를 읽는 그만의 노하우를 길게 전수받았다. 그리하여 골프 코스의 잔디에 대한 나의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오전 게임에서는 4타 차이로 일등, 오후 게임에서는 무려 7타 차이로 일등을 했다. 그래서 점심도 공짜, 저녁도 공짜, 골프공도 두 박스나 받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희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는 길에도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고, 동반자가 줄곧 운전했다. 운전을 자주 하는 그도 고속도로에서 연료 부족으로 차가 서는 비극은 처음 경험했다. 골프코스 잔디에 대한 많은 이야기도 우리는 오늘 처음 들어 보았다.


비극과 희극으로 다채롭게 수놓아진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골프 또한 뒤땅과 타핑, 굿샷과 굿퍼팅으로 다채롭게 수놓아졌다. 그 희비는 골프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모래언덕이 사방팔방에 있는 링크스에서는 더욱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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