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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09. 2023

자유, 민주와 평등 그리고 왕의 대관식 (1)

London Life

자유, 민주와 평등 그리고 왕의 대관식

(1) 자유의 시대, 왕의 의미에 대하여

  

  

지난 토요일에 찰스 3세가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왕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왕, 민주와 왕, 평등과 왕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시대에 무슨 왕이냐는 냉소를 넘어 왕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권좌에 오른 우리 대통령도 UN에서 자유와 민주를 반복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자유와 민주의 시대에 왕은 과연 무엇인가요?


대학시절에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가물가물한데, 다카시였던 것 같아요. 말수가 적었고 다소 소극적으로 보였습니다. 정확한 친구였고, 참으로 짠돌이였습니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였는데, 그게 맞나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친구였죠. 다카시와 일본어를 조금 알던 친구와 같이 밥을 자주 먹었습니다. 어느 날 약속을 취소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다카시에게 묻더군요. ‘취소하다는 일본어로 뭐야?’ ‘칸세루’ ‘칸세루? cancel를 말하는 거야?’ ‘응! 그 말에서 왔지!’ ‘그거 말고, 칸세루 이전에 일본어로 취소하다는 말이 있을 거 아니야?’ 다카시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대화에는 제가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죠. ‘일본은 영국 사람이 오기 전에는 칸세루 자체가 없었나 봐. 생각해 봐! 사무라이가 무슨 칸세루를 하겠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자유입니다. 사자 한 마리가 무리의 왕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사자 왕이 말합니다. ‘먹다 남은 음식만 먹다가 들소나 하이에나와 싸움이 나면, 제일 먼저 나가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짝짓기를 해서도 안된다.’ 그런 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면 여기에 남고, 그렇지 않으면 무리에서 나가라고 말합니다. 이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무리를 버릴 수 있는 것이 자유입니다. 인간도 대게 그러한 순간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지 않지만, 그런 옵션만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자유를 선택하는 순간, 무리에서 이탈하고 하이에나의 밥이 됩니다. 인간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어도 짐승의 밥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자유는 liberty의 번역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 번역을 일본에서 했는지 중국에서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너무나 완벽한 번역입니다. 치밀함으로 보았을 때 일본 번역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스스로 자와 말미암을 유가 합성되었습니다. 스스로 말미암는다. 사자는 할 수 없고,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이 스스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국과 미국에서 liberty가 오기 전에 동양에는 자유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자유로운 상태는 물론 있었고, 자유롭다는 형용사도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군요. 조상이 어느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거기에 얽매이는 것이지 무슨 자유가 있었는가? 칸세루가 없는데 어떻게 자유가 있었겠어? 자유라는 개념은 동양고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주’라는 단어를 썼고, ‘해탈’이라는 단어도 사용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자주와 다르고, 해탈과 다릅니다. 자유라는 단어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강하게 개입되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UN 총회에서 강조한 자유도 정치적인 의미의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시대에 삽니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를 누립니다. 대통령을 비방하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데에 거침이 없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자유가 시작된 곳이 바로 영국입니다. 1066년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의 왕이 되고, 그의 4대손인 존이 왕이 되었을 때인 1215년에 마그나 카르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곳에서 비로소 왕으로부터 신민의 자유, 왕으로부터 종교의 자유가 등장합니다. 마그나 카르타 이후 영국왕은 신민에게 양보를 해왔고,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 권리선언(Declaration of Rights), 권리장전(Bills of Right)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물론 자발적인 양보는 아니었습니다. 영국왕들은 지속적인 양보를 해 왔고, 덕분에 피를 최소한으로 흘리고, 정치적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누군가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고 말했지만, 우리의 자유와 민주는 타협의 결과물입니다. 양보와 타협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자유의 시대에 무슨 왕이고, 무슨 대관식이냐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는 정치적 자유는 엊그제 대관식을 한 찰스 3세 조상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양보의 대가로 우리는 현대적 의미의 정치적 자유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아직까지 대관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서로가 양보한 훌륭한 타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유의 시대에 무슨 대관식이냐는 말에는 역사의식의 빈곤함이 있습니다. 누구는 왕이라는 제도를 칸세루하자고 말하지만, 칸세루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그런 것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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