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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24. 2023

푸틴은 앞으로 웃통을 못 벗는다.

London Life

프리고진 사태 정리: 푸틴은 앞으로 웃통을 못 벗는다.

  

    

푸틴은 웃통 벗는 것을 좋아한다. 남자다움을 들어내고 싶어서다.


푸틴은 격투기를 좋아한다. 삼보, 유도, 권투와 MMF를 비롯한 모든 격투기를 좋아한다. 격투기 챔피언을 찾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러시아인은 그를 룰을 지키는 격투가로 본다. 남자며 격투기 선수다. 러시아인은 그를 콜로세움에 선 글래디에이터로 본다. 멋진 러셀 크루로 본다. 그럴수록 푸틴은 더 자주 웃통을 벗고, 격투기 경기장에 나타난다.


그를 러셀 크루로 본 사람에게는 푸틴이 간혹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그것은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공정한 싸움의 결과로 보였다. 콜로세움에서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글래디에이터의 몫이 아니다. 피에 굶주린 관중이 원한다면, 황제나 글래디에이터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가 죽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도 그가 죽일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죽은 사람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은 이미 항복한 사람이거나 상대가 되지 않은 적수였기 때문이었다. 글래디에이터가 그럴 이유가 없었을 것이란 주장에도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글래디에이터는 홍차에 독을 타거나 방사능 소포를 배달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콜로세움에서 웃통을 벗고 있는 푸틴에게 한동안 적수가 없었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깜도 안 되는 프리고진이란 병사가 도전을 걸어왔다. 푸틴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똘마니 루카센코를 시켜 싸우지 말자는 합의를 종용했고, 계속 싸우겠다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푸틴과 프리고진은 콜로세움을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푸틴은 집에 돌아가는 프리고진의 마차에 불화살을 날려 불태워 죽였다.


푸틴이 남자도 아니고 격투가도 아니란 것을 세상은 이미 오래전에 알았다. 늦게 안 사람이 지난해 2월에 알았다. 아직도 모르고 있는 사람 몇 명이 한반도에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많은 러시아인의 눈에 푸틴은 여전히 글래디에이터였다. 남자였고, 격투가였다. 공정했고 사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러셀 크루였다. 그는 복수를 위해,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콜로세움에 선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이제 누구의 눈에도 푸틴은 글래디에이터로도 보이지 않고 러셀 크루로 보이지도 않으며 황제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차라리 프리고진이 글래디에이터로 보일 지경이다.


앞으로 푸틴이 웃통을 벗거나 격투기 선수를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해도 그를 러셀 크루처럼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러시아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보드카에 쩔은 러시아 남자에게도 어느 정도의 가오란 것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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