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라이프
케인즈, Bloomsbury Group과 아내의 생일
자동차 바퀴에 녹이 슬었고, 거미줄도 쳐졌다. 자동차가 안쓰럽기도 하고 거미도 혼 내줄 겸 저녁에 무작정 차를 타고 나섰다. 시내의 교통량은 신호에 멈추면 차가 하나 뒤에 붙거나 말거나 하는 정도였다. 내셔날 갤러리를 거쳤고, 피카디리를 거쳤다. 뮤지컬 극장의 조명은 인파가 없으니 더 아름다웠다. 대영박물관을 거치니 러셀 스퀘어가 나타났다. 이 지역을 Bloomsbury라고 한다. 꽃이 한창 피어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내려 산책을 했다. 어둠 속에서 사진도 찍었다.
영국의 지명에는 bury가 많다 Salisbury, Sainsbury, Haileybury 등등. Bury는 berry가 나오는 valley를 연상시키지만, 동네를 뜻하는 borough와 동일한 의미다. 독일어의 berg와 비교될 수 있는 접미사다. 그러고 보면 Bloomberg와 Bloomsbury가 같은 동네인 셈이다.
Bloomsbury에 존 메이나드 케인즈가 1916년에서 1946년까지 살았다. 혼자 산 게 아니고 동네에 친구들과 모여 살았는데, 그들을 Bloomsbury 그룹이라고 한다. 케임브리지 출신의 남자들과 런던 킹스 컬리지 출신의 여자들이 주축 멤버였다.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작가, 던컨 그랜트와 같은 화가, 케인즈와 같은 지성인과 문화예술인들이 긴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정치적 입장으로 문화적 취향으로 뭉쳐진 사교 모임이었는데, 20세기 초반 브리티시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케인즈의 경제이론도 경제학의 아방가르드였다.
이 모임이 다른 모임보다 끈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서로가 정신적 및 육체적 사랑으로 얽히고설켰기 때문이다. Bloomsbury 그룹이 멤버들은 ‘lived in squares, painted in circles and loved in triangles’한 삶을 살았다. 러브 라인 중에 하나가 경제학자 케인즈와 화가 던컨 그랜트의 사랑이다. 케인즈는 지성과 미모를 동시에 갖추기 어려운데 던컨 그랜트 안에서 그 두 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첫번째 그림이 던컨 그랜트가 그려 준 케인즈며, 두번째 그림이 던컨 그랜트의 자화상이다. 지성과 미모가 조화로운가?
케인즈는 1925년에 러시아 발레리나 리디야 로포코바와 결혼했다. 결혼 기간에도 동성애는 이어졌지만, 케인즈와 로포코바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는데, 이것은 경제학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코로나 사태로 각국의 정부는 케인즈적인 처방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케인즈는 일차대전, 스페인 독감, 세계 대공항, 이차대전이라는 험란한 시대를 살면서, 총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 고민했다. 영국은 코로나에 대한 각종 거시경제 대책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쏟아 냈다. 3개월간 2500파운드의 급여를 대신 줄 테니까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금리를 65bp 내려 0.1%로 인하했으며, 500조까지 통화량을 늘리겠다고 3월 중순에 발표했다. 마치 ‘고용, 이자율과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발표하는 케인즈가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케인즈의 경제 이론은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들이 보기에 케인즈는 경제학자도 아니었다. 케인즈는 이튼스쿨에서 수학, 고전, 역사를 공부했고,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경제학은 케임브리지 시절에 두 달 정도 청강한 것이 전부다. 그런 사람이 기존 경제학을 깡그리 무시하니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의 개입은 시장을 왜곡시킬 것이며, 장기적으로 시장이 항상 옳다.’는 고전파 경제학자의 비판에 케인즈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는다. 폭풍우가 오는데 장기적으로는 바다가 다시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경제학자의 역할이라면 경제학자는 너무 날로 먹는 것이 아닌가?’ 토론에서 케인즈를 이기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버틀란드 러셀은 ‘케인즈와 대화하고 나면 항상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수학 전공의 학사인 케인즈를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자, 자존심이 상한 고전파 경제학 박자들은 ‘케인즈는 자식이 없어서 장기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Short-termism, Short-termist라는 비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과 윤지영의 생일이다. 어제의 시내 드라이브와 산책은 내가 주는 생일 선물이다. 와이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그림과 음악을 좋아했고 약간은 보이쉬한 면이 있었다. 그녀의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음악과 그림을 좋아했던 보이쉬한 여성이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 아들 세명을 낳고 살고 있다. live in squares, paint in circles, love in triangles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스퀘어를 산책하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세명의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로 인해 우리는 long-termism에 빠져있는 long-termist이기에 코로나 걱정은 하지 않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