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라이프
해리 포터와 Bloomsbury 출판사
코로나 바이러스가 케인즈의 경제 정책을 소환했고, 케인즈가 살던 곳을 산책하다가 Bloomsbury 그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케인즈와 버니지아 울프를 잘 몰라도, 런던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Bloomsbury는 귀에 익은 단어입니다. 왜냐면 JK 롤링의 해리 포터를 펴낸 출판사가 Bloomsbury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둘째는 11세인데 요즘 해리 포터를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Cherub, Spy School, School of Good and Evil 시리즈에 비교해 볼 때 해리 포터가 제일 재미있다고 합니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둘째에게 물어봤습니다. “예성아! JK 롤링은 어떤 정치 성향인 거 같아?” “당연히 보수당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부자들은 나쁜 놈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착한 걸로 나오잖아!”
JK 롤링은 노동당 후원자이지만, 노동당 내 좌파 세력을 보수당 못지않게 싫어하는 리버럴 좌파입니다. 블룸스버리 그룹과 JK 롤링은 정치적 성향과 페미니즘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면에서 유사합니다.
블룸스버리 출판사는 블룸스버리 지역에 위치한 작은 출판사였는데 여러 행운이 겹쳐지면서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가총액 2500억 원에 달하는 상장사입니다. JK 롤링도 블룸스버리 출판사를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서로 궁합이 잘 맞았던 것이지요.
JK 롤링이 해리 포터를 가지고 출판사를 직접 찾아간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출판 대행업자에게 책을 맡기면, 대행업자가 최적의 출판사를 찾아 주는 게 영국의 관행입니다. 출판 대행업자는 중개인이니까 웬만하면 책을 접수하죠. JK 롤링의 출판 대행업자는 Christopher Little이었습니다. 리틀은 책을 읽지도 않고 사무실에 놓아두었습니다. 그의 책상에는 ‘해리 포터와 철학자의 돌’ 첫 오십 페이지가 있었습니다. 그걸 직원이었던(아마 유일한 직원이었을 것임) Bryony Evens가 읽고 JK 롤링에게 원고 전부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JK 롤링 인생에서 받은 가장 행복한 편지였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리틀은 해리 포터를 들고 메이저 출판사를 노크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당시 아이들 책은 마이클 머퓨고의 War Horse처럼 분량이 적고 이야기 전개가 빨라야 했습니다. 해리 포터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길고 장황했죠.
주요 출판사의 거절로 해리 포터는 Bloomsbury 출판사에 전해지게 됩니다. 블룸스버리는 해리 포터를 만나기 2년 전에 처음 어린이 책을 발행해 보았습니다. 어린이 서적 분야에서 막 걸음마를 뗀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의 주인 Nigel Newton가 원고를 집에 가져가 8살 딸 Alice에게 읽어보게 합니다. 한 시간 후에 아빠 방으로 온 딸은 “Dad, this is so much better than anything else.”라고 말하고 출판을 재촉합니다. 그래서 뉴튼은 읽어 보지도 않고 2500파운드 수표를 발행하여 JK 롤링에게 주고 해리포터의 판권을 가지게 됩니다. 출판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계약이 8살 딸 덕분에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초판 1쇄는 고작 500권을 찍었습니다. 그게 JK 롤링에게 준 계약금과 출판 원가를 커버할 수 있는 최소 수량이었을 겁니다.
그 이후의 스토리는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에서 5억 권이 팔렸고, 70개 언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일곱번째 권은 출간 첫날에만 천이백만 권이 팔렸습니다. 세계 출판 역사의 모든 기록을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이 해리 포터 시리즈입니다.
출판 대행업자는 저자 수입의 15%를 받습니다. 당연히 크리스토퍼 리틀도 큰 부자가 되었지요. 브라이오니 이벤스도 성과급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저자 사인회 때, 브라이오니 이벤스가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습니다. JK 롤링이 ‘해리포터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아준 브라이오니에게’라고 사인을 해주었는데, 후일 이 책은 1.35억 원에 경매로 팔리게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이 블룸스버리 그룹이라고 하면, 해리 포터를 세상에 내놓은 출판사가 블룸스버리라는 것은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입니다.
블룸스버리 지역에 가면 참 볼 것도 많습니다. 블룸스버리 출판사도 한번 찾아가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