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라이프
영국 정원과 프랑스 정원에 나타나는 역사와 철학의 차이
창덕궁에 있는 비원에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가이드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일본 관광객이 잔뜩 기대하고 비원에 옵니다. 왕실의 정원이고 비밀의 정원이니 얼마나 기대가 크겠습니까? 비원을 다 둘러보고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대체 비원은 어디에 있어요?’ 일본인이 생각하는 정원과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원은 이렇게 차이가 큽니다.”
유럽의 정원은 크게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프랑스식 정원을 formal garden(격식 정원), 영국식 정원을 informal garden(비격식 정원)이라고 부릅니다.
프랑스식 정원의 특징은 기하학적 배치입니다. 대칭과 패턴을 중요시합니다. 깎고 다듬고 쓸고 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관리된 정돈미가 생명입니다. 그에 반해서 영국식 정원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중시합니다. 야생의 아름다움 속에 로맨틱한 포인트를 주려는 노력이 영국 정원에 있습니다.
아래 첫번째 사진처럼 프랑스식 정원은 자로 잰 듯한 정원이고, 영국식 정원은 들에 난 풀을 가져다 놓은 듯한 정원입니다. 프랑스식 정원에 비해 영국식 정원은 관리를 칼 같이 해 주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자연주의 정원이라고 해도 그냥 내까려 두면 정원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자연주의나 낭만주의는 추구하는 가치지 자연 그대로는 아니까요.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정원 속에는 역사와 철학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 여행을 다녀온 분들은 프랑스 궁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놀랐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영국 궁전은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가 정원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프랑스의 절대 왕정은 웅장하고 화려하고 강렬한 모습을 통해 권력의 지엄함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에펠탑이 상징하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정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절대왕정이라는 단어를 정원에도 적용하면 됩니다.
반면에 영국 정원은 산업혁명과 연관이 깊습니다. 산업혁명에 지친 영국인은 낭만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예술에 나타난 낭만주의 사조가 정원에도 나타납니다. 산업화를 겪은 영국인들은 야생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연 그 자체를 자신의 정원에 반영하려 했습니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산업혁명과 그에 대응한 낭만주의라는 단어를 정원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에 나타납니다. 프랑스식 정원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 드러납니다. 영국식 정원은 반대입니다. 인간에 대한 자연의 우위,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지배력이 드러납니다. 프랑스식 정원에 인간의 의지와 창의력이 나타난다면, 영국식 정원에는 인간의 한계와 유한성이 나타납니다.
매년 5월에 런던의 첼시에서 Chelsea Flower Show가 있습니다. 전 세계 가드너들이 총 출동하는 대규모 행사인데 올 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취소되었습니다. 4월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런던 마라톤은 10월로 연기가 되었는데, 꽃 축제는 연기를 할 수도 없습니다. 올 해는 꽃이 유난히 수난을 겪습니다. 동네 꽃은 난데없는 카메라 세례를 받기도 하고, 네델란드 꽃은 폐기 처분되기도 하고, 첼시의 꽃은 기대했던 눈길을 받지 못합니다.
최근에 학교에서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예성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예성아! 영국의 정원과 프랑스 정원은 차이가 뭐야?” “프랑스 정원에는 키스하는 남녀가 많고, 영국 정원에는 개가 많아요.” 예성이의 예상 밖 대답은 항상 즐거움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