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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05. 2020

마르크스, 레닌, 러셀과 영국 박물관

런던 라이프

마르크스, 레닌, 러셀, 영국 박물관과 어린이 날
    
‘저 사람은 집안이 좋아!’ ‘저 사람은 명문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 부러우면 늙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젊을 때는 그게 안 부러웠지만, 부럽게 된 지는 벌써 한참 되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의 하나가 버트란드 러셀 가문이다. 버트란드 러셀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 컸는데, 할아버지 존 러셀은 두번이나 영국 총리를 지냈다. 러셀 가문은 헨리 4세의 아들부터 시작되었다. 코벤트 가든, 소호, 블룸스버리 지역이 러셀 가문의 영지였다. 블룸스버리 지역에 가면 공원, 거리, 건물 등등에 러셀 이름이 많다.  

러셀 가문의 영지 한복판에 British Museum(영국 박물관)이 있다. 영국 박물관은 유물의 무덤이다. 중요한 유물도 이 곳에 들어가는 순간 하나도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나면, 로제타석도 클레오파트라의 미라도 감흥 없이 지나게 된다. 영국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자주 가는 수밖에 없다. 자주 가려면 블룸스버리 지역이나 소호 지역에 살아야 한다.

오늘은 매일 같이 영국 박물관을 방문했던 어느 철학자의 생일이다. 1818년 5월 5일에 칼 마르크스가 태어났다.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칼 마르크스가 18, 18 하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기억하기도 쉽다. 그런 저속한 기억 방식도 일리가 있다. 마르크스가 사회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면,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쓰고, 혁명을 생각했겠는가? 런던 북부에 있는 마르크스의 묘지에는 ‘그간의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쓰여 있다.

버틀란드 러셀은 19세기와 20세기를 걸쳐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는 칼 마르크스라고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철학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선의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하는데, 마르크스의 철학에는 선의가 없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행복을 지향하는 척했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부르즈와지의 불행이었다. 이런 부정적인 철학, 증오의 철학은 반드시 재앙을 가져오게 된다.” 러셀이 서 있던 계급적 입장에서 나온 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의심하고 성찰하는 삶을 살았던 러셀의 평가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프러시아 사람이었지만, 생의 대부분을 런던에서 살았다. 런던에는 그가 살았던 곳, 자주 갔던 곳, 혁명가들과 만났던 곳, 공부했던 곳, 그가 묻힌 곳과 그를 기념하는 곳이 있다. 마르크스에 대한 영국인의 평가는 버틀란드 러셀의 평가처럼 박하다. 케인즈의 마르크스에 대한 평가는 러셀보다 더 박했다. 관심 자체가 없었다. 케인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케인즈가 살았던 러셀 스퀘어에서 영국 박물관을 지나면 소호 스퀘어가 나오는데 그곳에 마르크스가 살았던 집이 있다. 그 건물의 일층에는 Barrafina라는 유명한 해산물 음식점이 있다. 이년 전에 페북 친구 두명과 그곳에서 밥을 먹었는데, 난 그 건물에 마르크스가 살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벽에 파란색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 마르크스 표지판은 삼층 외벽에 붙어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오늘 일부러 그곳을 찾아갔는데도 간신히 발견할 정도였다. 그렇게 붙일 거면 왜 붙여 놓았는지 모르겠다.

마르크스의 집에서 영국 박물관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마르크스는 그곳에서 자료를 모으고 책을 썼다. 박물관에 도서관이 있었다. 책은 킹스 크로스에 있는 브리티시 라이브러리로 옮겨졌지만, 도서관은 칼 마르크스가 공부했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영국 박물관 내의 도서관

  
영국 박물관 도서관을 매일 같이 찾아왔던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 있기에 없앨 수가 없다. 쑨원, 오스카 와일드, 마하트마 간디, 루디야드 키플링, 조지 오웰, 버나드 쇼, 마크 트웨인, 제이콥 리히터, 버틀란드 러셀, 존 케인즈,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버지니아 울프, 아서 코난 도일 등등. 영국 박물관이 유물의 무덤이라면, 영국 박물관 도서관은 저명인사의 무덤이다. 저 속에 이름을 올려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제이콥 리히터?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용한 가명이다.

레닌은 마르크스는 죽은 1883년에 고작 13살이었다. 마르크스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대신에 마르크스가 매일 같이 찾아왔던 도서관을 방문하여 책을 읽고, 책을 썼다. 레닌은 런던을 다섯번 방문했는데 첫번째 방문했을 때는 거의 일년 가까이 살았다. 방문할 때마다 불룸스버리 지역에 머물렀다. 영국 박물관에 자주 가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버틀란드 러셀이 1920년에 크레믈린 궁으로 레닌을 만나러 갔다. 러셀은 레닌을 만난 후에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러셀은 레닌 집무실의 검소한 모습, 레닌의 소탈한 모습, 레닌의 영어 실력에 놀랐지만, 레닌의 가지고 있던 경직된 생각에 실망했다. 러셀 눈에 레닌은 마르크스 사상의 도그마에 빠져 있는 사람으로 비쳤다.

오늘은 어린이 날이고 그 도그마를 만든 사람의 생일이다. 오늘 아이들에게 가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뚱맞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린이 날 기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준 다면, 무슨 이야기가 제일 좋을까? 마르크스가 만들고 레닌이 따랐던 도그마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보다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했던 러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이 런던 라이프에 더 어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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