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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14. 2020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JK 롤링

영국 예술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JK 롤링


  
JK 롤링은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했다. 그녀의 모든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가장 좋아하는 Emma를 20번 이상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의 위대함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했다. JK 롤링은 제인 오스틴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평가를 여러 번 인용했다.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소설은 시골 상류층 여성의 이야기다. 1800년대 초반의 시골 여성은 세상에 대한 별다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작품의 스케일은 작다. 하지만, 대사 하나하나에 사색적이며 독창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단조로운 소재지만 작품성은 현대 연애 소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당시 여성에게는 재산권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자여도 딸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수 없었다.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부유한 귀족과 결혼하는 것뿐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소재가 결혼이다.

재산권만 없었던 것이 아니고, 여자가 글을 쓰는 것도 이상하게 보였던 시절이다. 제인 오스틴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 거실에서 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러웠다. 하인들이 그녀가 글 쓰는 것을 이상하게 볼까 봐서...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고,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을 돈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셰익스피어보다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문제를 고민한 것은 제인 오스틴의 의식을 빌린 버지니아 울프(1882-1941)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보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셰익스피어가 가졌던 다양한 경험 말이다. 제인 오스틴 시대에는 언감생심이었고, 버지니아 울프 시대에는 어렵사리 시도는 해 볼 수 있었다. 자기만의 방과 돈이 있었던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성에 기반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블룸스버리 그룹을 통해 남성 엘리트와 교류하며 세상을 배웠고, 스스로 남성이 되어 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성애자이면서 동성애자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가 되어 보기도 하고, 제인 오스틴이 되어 보기도 했다. 그녀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남녀노소의 속으로 흘러가고 흘러나왔다.

JK 롤링은 자기만의 방이 없어서 카페에서 글을 썼다. 돈도 없었고, 다양한 세상 경험을 하지도 못했다. 해리 포터를 쓸 당시에 아이가 하나 있었다. 신경숙 소설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이 둘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이가 둘이 아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공지영 소설일 수도 있다.

그래도 JK 롤링에게는 제인 오스틴과 버지니아 울프 시대에 없었던 폭넓은 자유와 관용이 있었다. 무엇보다 제인 오스틴과 버지니아 울프가 쌓아 놓았던 업적 위에 그녀는 서 있을 수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한 말처럼.

"걸작은 외딴곳에서 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 전체가 공유한 생각의 결과물이며, 그 하나의 목소리 속에는 집단의 경험이 녹아 있다.”

JK 롤링은 해리 포터를 출간할 때, 조앤 롤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다. 해리 포터의 주 독자층이 될 소년들이 여성 작가의 환타지 소설을 사보지 않을 것이라고 출판사가 우려했기 때문이다. JK 롤링이 서 있던 토대가 제인 오스틴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금은 불안정한 토대였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JK 롤링 이후 우리 사회는 후세에게 훨씬 더 견고한 토대를 물려줄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이들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JK 롤링의 [해리 포터와 철학자의 돌]을 순서대로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런던의 락다운은 완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만 아니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오늘은 블룸스버리에 있는 러셀 스퀘어에 가서 Emma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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