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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12. 2020

거짓말은 용서가 되어도 위선은 용서가 안된다(?)

영국 정치


거짓말은 용서가 되어도 위선은 용서가 안된다(?)



조국 논쟁에서도 그랬고, 윤미향 논란에서도 그렇고 SNS 상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린다. 두 개 모두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이러다가 정신 착란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내는 그걸 회색분자의 숙명이라고 한다. 양 끝을 알면 중간에 설 수 있는데, 중간에 서는 것이 맘 편하거나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양 끝을 알고 있다’ 거나 ‘중간에 서 있다’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시소의 중간에 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은 시소 양끝의 비판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어서, 양 쪽으로부터의 비판은 이번만은 정중하게 사양한다.


회색분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 생각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들은 더 하면서도 그걸 매정하게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다. 조국 사태의 나경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위선이다. 그녀는 낙선했다. 둘째 드는 생각은 ‘조국과 윤미향의 행동에 다소간의 위선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위 두 가지 생각은 서로 모순적이란 것을 알고 있다.


영국 정치에서 위선(hypocrisy)은 중요한 테마다. 영국엔 보수당과 노동당이 있고, 소수 정당으로 자유민주당이 있다. 보수당의 뿌리는 토리당이고, 지금도 보수당원을 Tory라고 부른다. 노동당은 20세기 초에 노동자 계급이 정치 세력화하면서 나타난 신생 정당이다. 그 이전에는 지금의 자유민주당의 전신인 휘그당이 있었다.


오늘날 영국 사회의 귀족이나 상류층은 보수당 지지 성향을 보인다. 그래서 과거에도 Tory가 주요 정당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국 의회의 주도권은 휘그당이 잡고 있었다. 휘그당의 집권 기간이 훨씬 길고, 휘그가 토리보다 훨씬 귀족적이었다. 의회가 왕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귀족의 노력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휘그당의 의회 주도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휘그당은 의회파였고, 토리당은 왕당파였다. 러셀 같은 집안을 포함하여 전통의 명문 귀족들은 대부분 휘그당이었다. 휘그는 토리보다 사회 계층면에서 위에 있었다. 왕의 호위 기사나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이 토리였다. 집권당인 휘그당은 토리당의 도전이 있을 때마다, 권력을 공고화할 목적으로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면서 외연을 확대했다. 대표적인 것이 1832년 얼 그레이(Earl Grey) 총리에 의해 통과된 선거법 개혁이다.


토리당은 휘그당을 위선자라고 비판했다. 귀족의 지배를 굳건히 하려는 자들이 중산층을 위하는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휘그당은 노동당에 자리를 내주고 소수정당으로 전락했다. 세계 일차대전 이후의 영국 정치는 토리가 지배하고 있다. 휘그의 몰락을 위선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토리가 지배하는 영국 정치 현실에서 위선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위선이란 무엇인가? 위선이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을 자신이 하는 것을 말한다. (Hypocrisy is the practice of engaging in the same behavior or activity for which one criticizes another.) 정치인이 해서는 안될 것이 두 개 있다. 거짓말과 위선이다. 차이가 있다면 거짓말은 용서가 되어도, 위선은 용서가 안된다는 것이 토리의 생각이다.


바람을 피우면서 자신은 바람 피우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바람을 피우는 정치인이 ‘바람 피우는 사람들은 암적인 존재이며, 공직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영국 정치에는 ‘위선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거짓말 중에는 좋은 거짓말과 필요한 거짓말이 있지만, 위선 중에는 좋은 위선이나 필요한 위선은 없다.


영국에는 SAGE가 있다. Scientific Advisory Group for Emergencies다. 비상사태를 대비한 과학자 조언 그룹이다. COVID-19 국면에서 이들의 조언은 정부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이 그룹에 닐 퍼거슨이라는 유명한 과학자가 있다. 전염병 모델링의 최고 전문가인 퍼거슨은 51세의 젊은 과학자다. 조국만큼이나 잘 생겼고, 학자다운 풍모를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이 록다운 기간에 애인을 두 차례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이들은 OKCupid라는 애인찾기 앱에서 만났다. 퍼거슨은 아내와 한 명의 자녀가 있고, 상대방 여인은 두 명의 자녀와 남편이 있는 open marriage 상태의 유부녀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닐 퍼거슨은 SAGE에서 사퇴했다.


그가 사퇴한 이유는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 아니고, 그의 주장에 위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퍼거슨은 락다운을 주장한 학자였고, ‘거주지가 다른 연인이 만나는 것은 락다운 기간에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본인 입으로 했다. 그가 능숙한 정치인이었다면, 그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 ‘상식선에서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라고 말했을 것이고, 바람을 피우다 들통이 난 것은 좋은 가십은 되겠지만, 공직을 사퇴할 사안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위선에 인내가 없다’는 것은 영국 정치 환경에서 하는 말이다. 한국 환경에서는 다를 수 있다. ‘거짓말보다 위선이 더 나쁘다’는 주장에 반론의 여지가 많다. 전과 14범은 정치를 할 수 있는데, 위선적인 발언을 한 사람은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조국이나 윤미향이 정치인으로서 결격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그들이 보여줬던 위선적인 모습, 적어도 위선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한 반성이 있다면, 더 훌륭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경원도 자신의 위선에 대한 반성이 있다면, 정치인으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영 싸움이 되면, 당사자들은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을 반성하는 기회를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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