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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26. 2020

죽느냐 사느냐 그것만 문제가 아니라, 나이도 문제다.

런던 라이프

죽느냐 사느냐 그것만 문제가 아니라, 나이도 문제다.
   
  
남자 배우들의 평생의 소망은 나이가 들어 리어왕 배역을 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여자 발레리나의 소망이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 역을 해보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데트 역을 소망하는 어린 발레리나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 배우의 평생 소망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젊음은 감출 수 있지만, 늙음은 감출 수 없다. 실력 있는 배우가 잘 늙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 리어왕 배역일 것이다.

영국의 배우 이안 맥캘렌(Ian Mckellen)은 기사 작위를 받은 Sir Ian Mckellen이다. 1939년생으로 현재 81세다. 그는 60대에 리어왕 배역을 맡아 봤으니 남자 배우로서 평생의 소망을 이룬 것이다. 그런데 81세의 나이에 햄릿을 맡는다. 덴마크 왕자인 햄릿을 노배우가 맡는다고? 죽느냐 사느냐 그것만 문제가 아니라 나이도 문제다. 81세의 노배우가 햄릿을 한다면, 햄릿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가 배역을 맡을 수 있을까? 백세의 배우 중에 알아봐야 하는가? 이안 맥켈렌은 50년 전인 1971년에 햄릿 배역을 맡은 적이 있다.

셰익스피어(1564-1616) 작품의 배경과 주인공은 다채롭다. 햄릿은 덴마크의 젊은 왕자며, 리어왕은 늙은 영국 왕이며, 맥베스는 중년의 스코틀랜드 왕이고, 오델로는 젊은 무어인이며,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젊은이며, 한 여름밤의 꿈의 주인공은 그리스의 젊은 여성이다. 다양한 역사적 공간적 배경에서 남녀노소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가보지도 않은 나라를 정확히 묘사했고, 남녀노소 각양각색 등장인물의 심리를 세심히 그렸다.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쓴 것이 1606년이다. 400년 전에 살았고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한 셰익스피어가 이 모든 작품을 썼다는 것은 실로 믿기지 않는다.

궁정 깊은 곳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보니 궁정 생활을 한 왕실 인사다.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데 셰익스피어가 여성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어쩌면 엘리자베스 여왕인가? 사색의 깊이를 감안했을 때에 당대의 최고 지성인이 쓴 것이다. 작품과 인물의 다양성을 감안해 보면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볼 수가 없다. 다양한 셰익스피어 음모론이 있다.

음모론 중에 가장 구체적인 것은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프란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을 쓴 것이다’는 주장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평가하기 어렵지만, ‘당대의 최고 지성인이 다양한 시대와 계층, 남녀노소 두루두루 모든 인간의 고뇌에 천착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검토의 가치가 없다. 최고의 지성인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해답이다. 많은 작품 속의 그 많은 캐릭터와 수많은 어휘를 혼자 만들어 냈다는 것이 make sense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삶은 원래 full of non-sense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최고 수혜자는 자연이고, 최고 피해자는 공연이다. 자연은 오랜만에 인간이 없는 여유를 누렸다. 그러나 락다운이 해제되면서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영국인 친구는 그동안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며 7월부터 두 달간 자기는 자연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락다운이 풀리면 일을 해야지, 자연을 찾으면 되는가? 영국이라는 나라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신기하다. 셰익스피어 같은 조상을 둔 덕인가?

산과 바다, 공원과 해변은 인파로 붐빈다. 최대 수혜자 자연의 여유는 짧게 끝이 났다. 반면에 최대 피해자인 공연의 나쁜 시절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숨을 죽이고 두세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많은 프리랜서 문화 예술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되자마자, 공연이 오픈되자마자 바로 공연장을 찾는 것이 좋겠다. 81세의 왕자가 없으란 법도 없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는 1948년생으로 72세다. 81세의 이안 맥캘렌과 9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81세의 햄릿은 어떨지 눈여겨 보자. 죽느냐 사느냐 어느 것이 문제인지, 나이는 과연 문제인지 아닌지 살펴보자.


1971년 이안 맥켈렌이 주연한 햄릿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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