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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23. 2020

스포츠, 전쟁과 만나다. 골프도?

영국 역사

스포츠, 전쟁과 만나다. 골프도?


스포츠는 자주 전쟁과 교차한다. 현대에 전쟁이 이전보다 적은 것은 스포츠의 발전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많은 스포츠 게임을 만들어 낸 영국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 것인가? 아닌가?

스포츠는 전쟁의 새로운 버전이다. 대표적인 것이 축구다. 테레사 메이와 옥스퍼드 동기인 데이비드 딘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고, 럭비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손흥민이 전력으로 질주하여 독일의 빈 골대에 공을 차 넣는 장면을 심심할 때마다 유튜브를 통해 본다. 독일 선수들의 망연자실한 모습은 볼수록 통쾌하다고. 손흥민이 영국에서 사랑받는 이유가 다 있다.

아일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징그럽게 싸웠다. 이젠 매년 럭비를 통해서 격돌한다. 럭비가 전쟁을 대체한 셈이다. 웨일스 인들은 럭비를 신성시한다. 럭비를 통해서 야만성을 분출하고, 폭력성을 컨트롤한다.

7월 중순에 데이비드 딘과 스코틀랜드의 St Andrews Golf Club에 가기로 했다. Home of Golf, 골프가 태어난 곳에서 골프를 치기로 했다. 골프가 예전처럼 즐겁지 않은데, 세인트 앤드루스라는 이름 하나에 골프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샘 솟는다.

1300년대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지역에서 골프가 시작되었다. 목동들이 지팡이로 솔방울을 치면서 시작되었다는 골프가 1400년대 초에는 이미 스포츠로 정착했다. 그러다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에 의해 1457년에 골프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스코틀랜드는 매일같이 영국과 싸우던 시기였다.

전쟁 준비를 위해 활쏘기, 창검술을 읽혀야 할 젊은이들이 매일 같이 들판에 나가서 공을 치는 모습을 왕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은 안 하고 골프나 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보다 100배쯤 답답했을 것이다. 업무보다 골프에 관심을 가지는 공무원을 바라보던 김영삼 대통령의 맘이 그러했을까?

1502년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와 잉글랜드 왕 헨리 7세가 평화 협정을 맺었다. 평화의 징표로 제임스 4세와 마가렛 튜더(헨리 7세의 큰 딸이자, 헨리 8세의 누나)가 결혼했고, 골프 금지가 해제되었다. 이 결혼은 골프 역사에도 큰 의미를 가지지만, 영국 역사에서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영국의 전성기 토대를 쌓은 엘리자베스 1세가(헨리 8세의 딸) 후세가 없이 죽자, 영국은 1603년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제임스 4세와 마가렛 튜더의 후손)를 모셔와 영국 왕으로 앉힌다. 스코틀랜드 기준으로 제임스 6세, 영국 기준으로 제임스 1세다. 이분이 영어 성경 킹 제임스 버전의 주인공이다.

스코틀랜드 왕이 영국 왕을 겸하게 되면서 영국과 스코틀랜드 통합이 무혈로 이뤄졌다. 1502년에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평화협정이 있었지만, 반목과 갈등은 여전했다. 1603년에야 비로소 한 나라가 되면서 평화가 찾아왔다. 젊은 기사들이 눈치 보지 않고 골프를 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골프 금지를 해제한 제임스 4세는 골프를 즐긴 최초의 왕이며, 제임스 4세의 손녀 매리 여왕은 골프를 즐긴 최초의 여성이었다. 모두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골프를 즐겼다.

데이비드 딘은 옥스퍼드 출신이 아니랄까 봐 기억력이 좋다. 의미 있는 골프는 날짜까지 기억한다. 언제 어떤 골프채를 샀는지도 기억한다. 제임스 4세가 어떤 골프채를 샀는지도 알고 있다. 나의 기억을 물어본다. 난 골프를 좋아하지만,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2003년에 골프를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골프 클럽 브랜드였던 랭스필드가 파산하면서 풀세트를 가방과 함께 30만 원에 살 수 있었다. 보스였던 K팀장님이 친구들과 골프를 치는데, 갑자기 빈자리가 생겨서 안성에 있는 중앙 CC에서 첫 라운딩을 했다. 때는 여름인지 가을 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드라이버 대신에 랭스필드 3번 우드로 티샷을 했는데, 볼은 정확히 200야드를 날아가 페어웨이 정 중앙에 안착했다. 칭찬의 박수와 환호성 소리가 생생히 기억난다.

그 이외에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첫 이글의 순간도, 첫 홀인원의 순간도, 클럽 챔피언쉽에서 연장전까지 가서 아깝게 우승을 놓쳤던 순간조차도 기억이 어렴풋하다.

한 달 후면 세인트 앤드루스에 가서 골프를 친다. 이 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바다 바람, 강한 러프와 깊은 벙커에서의 골프가 왠지 전투처럼 느껴지지는 않을지? 골프 역사와의 만남은 매우 특별할 것이다. 나도 그날만큼은 날짜뿐 아니라 티샷 타임까지 오래 기억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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