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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29. 2020

영국의 해변과 브렌트유의 탄생

영국 산업

영국의 해변과 브렌트유의 탄생
  
  
답답한 마음은 바다에 가야 풀립니다. 영국의 남해안에 있는 본머스 해변의 인파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리 해변에 모였을까요? 평상 시라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이집트 해변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모두 영국 남해안에 모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해운대에 모이듯이요.

바다로 둘러 싸인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삼면이 바다라는 것은 축복으로 배웠고, 국토의 70%가 산악인 것인 아쉬움이라고 배웠습니다. 지나고 보니 다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섬나라인 영국은 북해(North Sea)의 영유권의 절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을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벨리에, 프랑스가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해변이 있고, 고기를 잡을 수 있고, 해상 운송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만일 앞바다에서 석유나 천연가스까지 나온다면 그보다 더한 금상첨화가 있겠습니까?

 


1971년에 영국의 쉘(Shell) 사가 북해에서 유전을 하나 발견합니다. 쉘은 유전이 발견될 때마다 A, B, C 알파벳 순서로 새(bird) 이름을 따와서 유전 명칭을 지었습니다. 이번에는 알파벳 B의 차례였습니다. 그래서 북해에 자생하는 흙 기러기인 브렌트 구스(Brent Goose)의 이름을 따서 브렌트 유전(Brent Oil Field)라고 불렀습니다.

발견 5년 만인 1976년에 상업생산을 시작했고, 1982년에는 하루에 500 000배럴을 생산했습니다. 영국은 여전히 전 세계 13위, 유럽 1위의 원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입니다. 일 생산량은 최근에 노르웨이가 무섭게 치고 올라와 유럽 2위가 되었을 겁니다.

브렌트 유전은 수명을 다해 해체 작업 중이지만, 이름만은 남아 북해산 원유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북해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한 곳에 모아서 팔고 이를 브렌트유라고 부릅니다. 브렌트유는 12개 광구의 원유를 섞어서(blending) 판매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일정하게 나옵니다. 블랜딩 한 홍차, 블랜딩 한 위스키와 같이 블랜딩 한 원유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브렌트유는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와 함께 유가를 표시하는 대표적인 기준입니다. 황의 함유량으로 보면 WTI가 0.24%, 브렌트가 0.37%니까 WTI가 좋은 기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더 스위트(sweet)하다고 합니다. 황의 함유량이 적을수록 정제가 용이하니까 스위트하겠지요.

그런데 브렌트유가 WTI보다 비싸게 거래됩니다. 과거에는 WTI가 브렌트보다 비쌌지만, 2000년대에 들어 셰일 혁명이라 불리는 육상 시추 기술의 혁신으로 인해 WTI의 생산원가가 낮아졌고 공급량도 늘어났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WTI가 운송 측면에서 비용이 더 듭니다. 브렌트는 북해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바로 유조선에 싣고 전 세계로 갈 수 있지만, WTI는 내륙에 있어서 해상으로 나가려면 운송료가 더 듭니다. 인도지 기준으로 WTI가 싸야 도착지 기준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깁니다.

원유를 반드시 북해나 텍사스에서 사는 것은 아닌데, 브렌트유 가격과 WTI 가격은 왜 중요할까요?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원유를 삽니다. 브렌트 가격과 WTI 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그 가격이 유가를 정하는 주요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SK가 러시아의 가즈프롬과 협상을 할 때에 ‘일 년 동안 매달 백만 배럴을 매입하는데 가격은 인도시점의 브렌트유 가격에서 5달러 낮은 가격으로 계약합시다.’ 그렇게 제안하면, 가즈프롬에서 ‘4달러!’ 이렇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누구는 브렌트를 기준으로 삼고, 누구는 WTI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현재 전 세계 원유 거래량의 2/3가 브렌트를 벤치마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OPEC, 유럽, 아프리카, 러시아, 인도가 벤치마크로 브렌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WTI 선물이 거래되는 것은 뉴욕의 NYMEX이고, 브렌트 선물이 거래되는 곳은 ICE(인터컨티넨탈 거래소)입니다. 두 거래소의 거래량은 비슷합니다. 브렌트가 벤치마크로 더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많은 원유 실거래자들은 ICE에서 원유 가격을 헷지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두 거래소의 거래량이 비슷하다면, WTI  선물에 더 많은 투기자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유 ETF나 ETN이 WTI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원유 가격 상승이나 하락에 베팅하는 세력들 중에 다수가 WTI를 거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0년은 브렌트 유전의 해체가 완료되는 해입니다. 해상 구조물의 상당 부분을 남겨 놓는데도 해체가 어려운가 봅니다. 브렌트 유전 같은 대형 해상 유전을 해체하는데 수조 원이 투여된다고 합니다. 원유는 바다의 선물이었으니, 최대한 잘 복원을 해 놓아야겠지요. 그래야 여름에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 더욱 즐겁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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