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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l 01. 2020

큐 가든과 버지니아 울프

런던 라이프

큐 가든과 버지니아 울프


한국의 유명 가드너가 런던에 와서 해준 이야기가 있다. ‘가드닝에 관해 몇 년을 공부하는 것보다 큐 가든(Kew Gardens)을 한번 가보는 것이 낮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럭다운 때에 큐 가든이 그렇게 보고 싶었다. 봄이었으니까, 녹음과 꽃이 활짝 피는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락다운은 풀렸고, 큐 가든은 문을 열었다.

와이프는 무슨 연유인지 말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지 7년 만에 말을 타러 리치몬드 공원에 갔다. 그 사이에 나는 큰 아이와 큐 가든을 찾았다. 큐 가든의 브로드 워크(broad walk)를 따라 펼쳐지는 꽃의 색깔과 모양은 예술이다. 어떻게 저런 색과 모양, 그리고 저런 배치가 나올까? 색과 모양은 하늘과 자연의 작품이지만, 저 배치는 인간의 작품이 아닌가? 기막힌 영국식 정원이다. 연신 카메라를 눌러보지만, 흐린 날씨 탓에 원하는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날씨 탓이 아니다. 극적으로 발전한 아이폰과 갤럭시의 카메라 기술에도 불구하고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은 눈이 담을 수 있는 것이 백분이 일도 되지 못한다.  

“타원형 화단에는 백여 개쯤 되어 보이는 줄기들이 솟아올라, 중간쯤에서는 하트나 긴 혓바닥 모양의 잎사귀로 벌어지고, 끄트머리에선 색색가지 형상이 표면에 더해진 빨강, 파랑, 혹은 노랑의 꽃잎이 펼쳐졌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7년에 쓴 ‘큐 가든’이라는 단편 소설이 첫 소절이다. 아이폰 카메라가 빛을 다 담지 못하듯이, 버니지아 울프의 묘사도 색을 다 담지 못했다. 큐 가든의 색을 빨강, 파랑, 노랑의 꽃잎이라고 묘사하다니? 그저 색색가지라고 묘사하다니? 모토롤라 2G 폰으로 사진을 찍은 느낌이다. 꽃잎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색을 가지게 되었는가? 색을 표현하는 단어가 1927년에는 그것밖에 없었는가? 아니면 버지니아 울프의 어휘력이 부족했는가?

  


큐 가든은 1759년 조지 3세의 어머니가 가든을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1771년부터 식물 채집을 위해 전 세계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현재는 보유한 종은 5만 종이 넘고, 식물 개체 수는 8백만 개가 넘는다. 락다운이 해제되면서 큐 가든은 오픈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에서 아직은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든 내의 그린 하우스, 박물관, 궁전은 아직 오픈되지 않았고, 방문자도 아직은 많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올해 줄어드는 매출이 220억 원가량 될 것이라고 한다.

방문자가 적어서 한적하고, 한적하기에 버지니아 울프가 바라보았던 1927년의 큐 가든이 이렇게 조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녀가 나무 밑에 누워있는 공원에 오면, 누구나 지난날 생각이 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오늘 나도 그렇게 지난날이 생각났고, 지난 사람도 생각났다.
   


큐 가든이 커다란 나무 밑에는 벤치가 있는데, 영국 공원에 있는 대부분의 벤치처럼, 이곳 벤치에도 어김없이 누군가를 기리는 표시가 되어 있다. 어느 벤치에는 정성 들여 작성한 편지가 매달려 있었다. 이 편지는 정성상 왠지 어디든지 전달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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