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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l 25. 2020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니다

런던 라이프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니다
   
    
1. 멋진 회원제 골프장이다?
-. 퍼블릭 골프장으로 누구나 칠 수 있다. 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추첨으로 결정한다. 사흘 전에 신청을 받아 이틀 전에 추첨자가 결정된다. 당첨된 사람은 자신의 핸디캡을 증명할 수 있는 증서를 가져와야 한다. 골프의 고향(Home of Golf)에 오려면, 골퍼라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2. 당첨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어떻게 골프 치러 가나?
-.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 골프장이 일곱 개가 있다. 올드 코스를 제외한 여섯 개는 어렵지 않게 예약해서 칠 수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코스도 있어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반드시 올드 코스에서 치고 싶다면 방법이 있다. 세명 또는 두명이 출발하는 조가 있기 때문에, 그 조에 조인을 신청할 수 있다. 여러 명이 왔어도 한명씩 다른 조에 붙으면 칠 수 있다.

3. 회원비는 얼마인가?
-. 퍼블릭이지만 회원도 있다. 일년에 천파운드만 내면 일곱개 링크스 골프장을 추가 비용 없이 칠 수 있다. 학생의 경우 250파운드면 일년 내내 칠 수 있다. 올드 코스는 회원도 비회원처럼  추첨 신청을 해야 하지만 당첨 확률이 높고, 좋은 시간대에 배정이 된다.

4. 골프장 주인이 누구인데 그렇게 싸게 운영하는가?
-. 골프장은 동네 구청에서 가지고 있다. 골프장은 골프장이라기보다 동네 공원에 가깝다. 주민들이 자유자재로 골프장 코스를 가로질러 해변에 간다. 자전거를 타고 페어웨이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일요일은 골프가 중단되어 온전한 동네 공원이 된다. 누구나 코스 깊숙하게 들어가 산책한다.

5. 게스트 그린피는 얼마인가?
-. 185파운드다. 게스트가 내는 그린피로 골프장이 관리되고 이 동네가 먹고 산다. 보통 캐디 없이 치지만, 처음 오는 경우 캐디 쓰는 걸 권장한다. 두 홀이 그린과 페어웨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고 홀과 홀이 교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처음이라면 갈피를 잡기 어렵다. 캐디피는 공식으로 55파운드이며, 추가로 25파운드를 팁으로 주는 게 관행이다.

6. 러프는 강렬한가?
-. 모든 러프가 탈출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러프의 상태가 다르다. 여름이라면 부드러운 스윙으로 탈출할 수 있는 러프가 3/4 정도, 무시무시한 러프가 1/4 정도 되어 보인다.

7. 벙커 탈출은 어려운가?
-. 벙커를 깊이 파서 항아리 벙커를 만든 이유는 강한 바다 바람이 벙커 모래를 쓸어 가기 때문에 수직으로 깊게 파지 않으면 유지가 안된다. 항아리처럼 만들어도 모래가 금방 없어져 채워 넣어야 한다. 벙커와 모래는 자연 그대로라서 생각처럼 멋지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벙커 턱에 걸리면 3타, 4타 만에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한해에 US 오픈, US 아마추어 오픈, 브리티시 오픈, 브리티시 아마추어 오픈을 모두 석권한 전무후무한 기록의 소유자 바비 존스가 11번 홀 벙커샷을 네번 만에 탈출하고 기분 나빠서 집에 가버린 적도 있다. 공교롭게 나도 그 벙커에 빠졌는데, 네번 만에 벙커에서 탈출했다. 같은 실력이다. 링크스 코스에서 벙커는 벌타라고 생각하면 된다.

  


8. 링크스 코스가 무엇인가?
-. 링크스 코스는 골프가 시작한 스코틀랜드 해안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형태의 골프 코스를 지칭한다. 해안가에 자리 잡고, 모래언덕으로 페어웨이가 울퉁불퉁하고, 벙커는 바다 모래를 사용하며, 워터 해저드가 없고, 나무가 없는 골프장이다. ‘학생들에게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골프장을 제공하면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유명 골퍼가 많이 나왔겠네?’하는 질문에 캐디는 이렇게 답했다. ‘링크스(Links) 골프와 인랜드(In Land) 골프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스포츠다. 링크스 골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골퍼가 인랜드 골프가 중심인 PGA나 LPGA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어렵다.’

9. 강렬한 바람과 야생의 러프가 어우러져서 너무 황량하지 않은가?
-. 올드 코스는 우측에 바다가 있지만, 바다가 낭떠러지가 아니고 해수욕장이라서 사람들이 많다. 좌측은 도시라서 건물이 있다. 건물은 고색이 찬연하여 옛 성이나 마을이 주는 평안함이 있다. 후반 9홀은 세인트 앤드루스 시내를 바라보며 골프를 치는데, 경관이 장관이다.

10. 그린은 어떤가?
-. 퍼팅 그린의 운동장 같다. 6번 홀 그린은 넓이가 축구장과 동일한 크기다. 그린이 크기 때문에 두개 홀이 그린을 공유한다. 전반 나인홀은 우측에 흰 깃발을 공략하고, 후반 나인홀은 좌측에 붉은 깃발을 공략한다. 그린 상태는 좋은 편이며, 그린 주변도 잔디가 짧아서 그린이 아니어도 퍼팅 플레이가 많다. 퍼터를 잘 다루는 골퍼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골프장이다.

11. 누가 주로 골프를 치러 오는가? 아시아인은 많은가?
-. 골프장을 찾는 80%는 미국인이다. 미국 골퍼의 평생소원은 올드 코스에서 플레이해보는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비슷한 숫자로 오고, 말레이시아 사람이 의외로 많이 와서 큰 내기를 한다.

12. 올드 코스는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가?
-. 14세기 말에 골프가 여기서 시작되었고, 15세기 중반에 이미 스포츠로 널리 자리를 잡았다. 스코틀랜드 왕이 활쏘기 연습을 해야 할 젊은이들이 골프만 치는 것에 분노해 1457년 골프를 금지시켰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평화 협정을 맺은 1502년에 다시 골프가 허용되었고,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와 여왕 메리도 이곳에서 골프를 쳤다. 골프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평화의 상징이다. ‘스코틀랜드인은 항상 전쟁을 했고, 전쟁이 없을 때는 자기들끼리 싸웠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골프장 곳곳에 비석이 있는데 그 비석은 사냥꾼 지역과 골퍼 지역을 나눈 것이다. 서로가 너무 싸움을 해서 서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경계석을 세우고 G라고 표시해 놓았다. G가 있는 쪽이 골퍼가 사용하는 공간, 반대쪽이 사냥꾼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13. 무엇이 특별한가?
-. 역사와 자연, 도시와 사람이 함께하는 골프장이다. 매 5년마다 브리티시 오픈을 이곳에서 개최한다. 바비 존스는 브리티시 오픈을 우승하지 않고는 성공한 골프 선수가 아니라고 말했으며,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것을 빼앗겨도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의 골프 경험만은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올드 코스는 이럴 거야’라는 예상을 가지고 이곳에 온다면 예상이 어떠한 것이든 모두 틀리게 될 것이다. 와서 보고 플레이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고로 ‘올드 코스는 무엇이다’라는 모든 정의는 허망하다. 런던 라이프 스승 중 한 분이 해 준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골퍼가 있다. 올드 코스에서 골프를 쳐 본 골퍼와 쳐 보지 않은 골퍼!’

14. 행복했는가?
-. 일번 홀 티샷 박스에서 몹시 떨렸다.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갤러리가 되어 박수도 쳐준다. 버디도 했고, 전반 9홀을 이븐으로 마쳤다. 후반에 벙커에 세번 빠졌는데, 첫번째는 네번 만에 탈출했고, 두번째는 세번 만에 탈출했으며, 세번째는 한번 만에 탈출했다. 오늘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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