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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01. 2020

두 도시 이야기: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라이벌 관계

런던 라이프

두 도시 이야기: 맨체스터와 리버풀
  
  
맨체스터와 리버풀 일대에는 유명 축구 클럽이 많습니다. 맨유, 맨시티, 리버풀, 에버튼을 비롯하여 조원희 선수가 뛰었던 위건, 이청룡 선수가 뛰었던 볼튼, 허더스필드 등이 모두 주변에 밀집해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활약할 무렵에 맨체스터 시티가 강호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맨유 감독과 모든 선수는 리버풀을 최고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퍼거슨 감독, 루니, 긱스, 스콜스 등은 맨시티는 모르겠고, 리버풀을 꺽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맨체스터 선수들은 리버풀을 꺽어야 했을까요?

축구는 노동자 계급의 스포츠로 시작했습니다. 이 점이 테니스, 크리켓, 럭비, 골프 등과는 다른 점입니다. 오늘날 축구는 전세계에 가장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가 되었지만, 영국에서는 아직도 노동자 계급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맨체스터나 리버풀은 산업혁명의 중심으로 노동자의 고향같은 곳입니다. 18세기 19세기 노동자가 집중되어 있던 곳입니다. 이 지역이 축구가 강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맨체스터는 방직 산업이 중심이었죠. 칼 마르크스를 후원한 프리드리히 앵겔스의 아버지도 맨체스터에서 방직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죠. 맨체스터에서 제작된 방직은 기차로 리버풀로 이동하여 리버풀 항구에서 선적 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갔습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같이 발전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증기 기관차가 이끄는 철도가 놓여진 곳이 맨체스터와 리버풀 구간입니다. 두 도시는 5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유럽내 산업혁명 후발국이 추격해 오면서 맨체스터 공장의 마진이 박해지기 시작했고, 맨체스터는 리버풀에 지불하는 항구 비용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885년에 맨체스터 운하를 기획하여, 맨체스터를 바다로 연결시킬 생각을 했습니다. 리버풀은 운하 계획을 좌절시켜야할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운하가 생기면 리버풀 항구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공동 운명체였던 두 도시가 이때부터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서로 잘 되는 꼴을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맨체스터 운하가 착공된 해가 1887년, 완공되어 개통된 해가 1894년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모태가 된 철도회사 축구팀이 창단된 해가 1878년, 리버풀 FC가 창단된 해가 1892년입니다. 운하를 놓고 두 도시의 싸움이 시작되었을 무렵에 영국 프로 축구팀이 결성 되었고, 축구 리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맨체스터와 리버풀 축구팀이 사생결단의 축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리버풀의 전성기가 있었고, 맨유의 전성기가 있었지만, 두팀은 모두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팀입니다. 이제 두팀의 우승 횟수도 비슷해졌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우승이 없었던 리버풀의 유일한 약점이 올해에 극복되었습니다. 리버풀을 가보니 우승의 기쁨이 곳곳에 묻어 납니다. 가정집 창문에, 길 거리에 우승에 대한 기쁨이 표시가 넘쳐납니다.

영국 전역을 다니며 설교를 했던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리버풀이 영국내 가장 깨끗하고 가장 좋은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축구마저 우승했으니, 리버풀은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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