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Apr 29. 2022
공주에 있는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집합 연수를 받게 되자 현장감 있는 강의를 듣고 제대로 공부가 된다는 것이 좋았고, 한편으로는 공주까지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퇴근 후에는 공주에서 돌아와 온양 시내에 사는 여동생을 만나기로 했었다. 연수를 마치고 보니 시간이 평소보다 좀 늦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길이 아니라 직접 온양 시내로 나가는 길을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네비에 목적지를 찍었다.
내가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네비는 참 현명하고 침착하다. 앞에 어떤 주의 요소가 있는지 미리미리 알려주고 딱 알맞을 때 다시 한번 알려준다. 설령 자기 말을 안 듣고 다른 길로 가더라도 얼른 수정해서 다시 안내해주며 화를 내는 일도 없고 자기 맘대로 중도에 그만두는 일도 없다. 가끔 고지식하고 고집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말만 잘 들으면 어쨌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준다.
네비는 길 안내뿐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정보도 알려주었다. 거기서 나는 여러 가지를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시속 얼마 이상으로 가면 단속 카메라가 나를 찍을 거라든지,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방지턱을 넘을 때 엉덩방아를 찧을 거라든지, 미리 차선을 변경해 놓지 않으면 저 앞에서 당황하게 될 거라든지, 어느 차로를 따라가야 고가도로 진입이 가능하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교통정보 수집 구간이라는 가외의 정보도 알려주었다. 내가 위반을 하지 않아도 내 정보를 수집하는 누군가가 그렇게 있는가 보다. 꽤 여러 번 안내 멘트를 들었으니 말이다.
“내 교통정보가 엄청나게 수집되고 있구만.”
아마 그래도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어떤 범죄를 저질러서 도주 중이라면 그러한 정보수집이 두렵겠지만 나는 기껏해야 속도위반으로 받는 불이익, 이를테면 규칙을 어긴 대가로 돈을 좀 몇만 원 내야 한다든가, 차의 번호판이 찍힌 연분홍색 우편물이 배달되었을 때 집에서 듣기 싫은 충고를 좀 듣는다든가 하는 정도를 걱정할 뿐이다.
얼마쯤 가다 보니 네비가 내게 오른쪽 도로로 내려가라고 했다. 그래서 내렸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후회했다. 이럴 때가 네비의 말을 듣지 말고 내 생각대로 해야 되는 지점이었는데 아차 싶었다. 전에 자주 다닐 때는 어느 곳에서 네비를 따라야 하고 어느 곳에서는 따르지 않는 게 좋은지 다 알았었는데 오랜만이다 보니 감을 잃었던 것이다.
네비는 멀쩡한 4차선 도로를 놓아두고 웬 시골길을 골라서 가라고 하더니 가는 내내 말이 많았다. 시속 50구간이다, 심지어 30구간이다, 방지턱은 또 왜 그리 많다는 건지 잔소리가 끊일 새가 없다. 그런데 한참 가다 생각해보니 교통정보수집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 아마도 교통정보 수집은 큰 도로에서만 하는가 보다. 교통정보수집은 내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밝히지 않으면서 ‘나는 네가 하는 짓을 다 보고 있다’는 빅브라더의 포스를 느꼈다면 길목마다 지켜 서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신호등이며 단속장비들은 리틀 브라더라고나 해야 할지 참 난감하고 갑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브라더들의 대변인인 씨스터 네비는 침착하고 상냥한 목소리여서 나는 이런 감시자들의 엄연한 존재에서 압력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었다. 만약에 실제는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이었대도 이 얌전하고 나긋나긋한 네비가 내게 '전방에 단속 카메라가 있습니다. 시속 50킬로미터 이하로 주행하여 주십시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의심 없이 따랐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연수의 꼭지 중 하나가 ‘경계의 소멸’에 대한 것이었다. 코로나로 온라인 원격 수업이 진행되면서 화면을 통해 쌍방향 수업을 하는 것은 만나는 것인지 안 만나는 것인지, 한 화면에서 같이 활동을 하고 있는 학습자들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인지 아닌지, 메타버스의 세상에서는 성별의 경계, 나이의 경계, 지역의 경계가 의미가 있을 것인지 등등이다. 네비만 해도 그렇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그러한 경계나 정체서이 있기는 한 건가? 빅브라더도 마찬가지다. 무서운 것인지 고마운 것인지, 감시자인지 보호자인지 참 모호하다.
* * * *
의도치 않게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네비의 안내를 따르다 보니 나중에는 아는 길이 나오게 되었다. 그 길이 그렇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운전만 신경 쓰느라 길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길을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정말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는 늘 지난 일은 아름답고, 현재는 뭔가 아쉽고, 미래의 계획은 이리저리 바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