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Jun 11. 2022
출근길에 지나는 사거리가 있다. 거기에는 신호등이 있는데 내가 다다랐을 때 주로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 사방을 돌아가며 한 방향씩 녹색신호를 주니까 내 앞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을 확률은 3/4이다. 오늘은 내 진행방향의 청신호가 바로 전에 끊겨서 옆 방향으로 돌아간 참이었다. 다시 한 바퀴를 돌아야 이쪽 차례가 올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부터 빨간 신호등을 고맙게 생각하게 되었다. 몇 달 전에 그 자리에서 접촉사고가 난 적이 있다. 그날 아침에는 신호를 따로 주지 않고 점멸등이 켜져 있었다. 적당히 알아서들 건너가라는 것이다. 아마도 일정시간에만 신호를 주고 그 외 시간에는 점멸신호로 운영을 하는 듯 했다. 나는 나름대로 살펴보고 다른 차들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다가온 차가 있었다. 그 차 입장에서도 예상 못했던 상황이었을 거다. 피차간에 너무 늦게 보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사거리를 건널 때마다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침에 점멸등이 아닌 제대로 된 신호가 운영되었다. 그래서 적어도 출근길에는 안심하고 사거리를 건널 수 있다. 대신 퇴근길에는 요즘도 점멸등을 켜기 때문에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저녁에도 빨간 신호등을 켜 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가끔은 때 마침 녹색신호가 들어와 있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오늘도 사거리에서 빨간 신호를 보고 대기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가 두 대, 그다음엔 내가 건널 것이다. 나는 빨간 신호등이 들어와 있는 동안 안심하고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그동안은 기다려야 하고 차례가 되면 내가 녹색신호를 받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세 방향의 차들을 빨간 신호로 막아줄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호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이 쪽 차례가 왔다. 어느 차선에 차가 몇 대가 있건 간에 시간은 똑같이 준다. 그러니 불평할 이유도 없다.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상황을 반영한다는 미명 하에 이리저리 고려하다가 자칫 원칙 없는 결정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신호등은 그러한 배려가 없다. 어떤 날은 사거리에 나 혼자 있는데도 아무도 없는 차선에 녹색 불을 차례로 켜 주면서 날 더러 기다리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그게 좋다. 융통성 없는 고지식함, 나에게도 종종 필요한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