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좋고 많아도 좋은 것

by lemonfresh

국어 시간이었습니다. 간단한 옛날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노루와 토끼와 두꺼비가 서로 자기가 더 나이가 많다고 우기는 내용입니다. 내용 공부가 끝난 다음에 제가 아이들에게 ‘나이가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인가?’하고 물었습니다.

“네! 좋아요.”

“그래? 왜?”

“아... 아니요!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좋아요!”

“어린이가 더 좋아? 그건 또 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더 오래 살 수 있어요!”

맞다. 가진 시간에 있어서는 어떤 어른도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겠지.

“학교 끝나고 놀 수 있어요. 어른들은 못 놀아요.”

아이들에게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평소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른들 일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지요.

“아냐. 나는 학교 끝나고 못 놀아. 밥 먹고 바로 학원 가서 여덟 시에 들어와.”

맨날 숙제할 시간 없다고 하는 선규. 그러니까 숙제할 시간이 없지.

“그런데 애들은 학원에 다닐 수 있어서 더 좋아요.”

“그게 왜 좋은데?”

“재미있어요. 검도도 하고, 피아노치고, 영어도 해요. 재미있어요.”

“그렇구나. 또 다른 사람 의견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같이 놀아서 좋아요.”

“공부할 수 있는 게 좋아, 아니면 친구들하고 놀 수 있는 게 좋아?”

“둘 다요. 수학이 재미있어요.”

“수학이 재미있어?”

“네!!!”

“정말? 수학 공부가 좋은 사람 손 들어봐.”

처음엔 네댓 명이 들고 그다음엔 다 따라 들었는데 수학을 제일 잘하는 승현이만 손을 안 들었습니다.

“승현이는 재미있으면서 손 안 들어요.”

승현이는 자기감정을 숨기려고 종종 반대로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요.”

“장난감도 가지고 놀아요.”

“봉사활동도 해요.”

“수염이 안 나요.”

수염이 안 나서 좋다는 말은 아빠가 아침마다 면도하는 게 귀찮다고 ‘수염 좀 안 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말하는 봉사활동이란 매주 금요일(우리 2학년 봉사활동 요일) 아침에 학교에 오면 가방을 교실에 놓고 나와서 운동장에 있는 휴지를 줍는 것을 말합니다. 휴지 조금 줍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학교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실컷 떠들고 뛰어다니는 거죠. 그러니까 봉사활동 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어린이가 좋은 점이 또 있어요. 엄마를 많이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도 늙으시니까 그럼 돌아가시잖아요. 그런데 어린이는 엄마 아빠를 많이 볼 수 있으니까 어른보다 더 좋아요.”

“맞다. 맞다.”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맞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되고 싶은 게 될 수 있어요.”

“되고 싶은 것? 예를 들면?”

“만약 어떤 할아버지의 꿈이 선생님이라면 늙어서 못 되잖아요. 저는 피아니스트가 꿈인데 될 수 있어요.”

“맞아요. 공부도 잘하고 꿈을 이룰 수 있어요.”

“저는 학원 차 운전하는 일 할 거예요.”

선규는 아빠가 학원 차를 운행하시니까 자기도 그게 되고 싶다고 합니다.

“나 유치원 때 친구는 방구차 운전하는 사람 된다고 했었는데.”

방구차란 꽁무니에서 하얀 연기 같은 소독약을 뿜으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는 차를 말합니다. 그 뒤를 아이들이 우우 몰려서 따라다니지요.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서 제가 말하였습니다.

“그렇구나. 너희들은 좋겠다. 어리니까 오래 살 수도 있고, 꿈도 이룰 수 있고. 선생님은 어른이라 좋지도 않네.”

제가 몹시 실망하는 시늉을 하니까 아이들이 잠잠해졌습니다. 잠시 생각하더니 한 아이가 말합니다.

“그런데 어른도 좋아요.”

“어른이 뭐가 좋아?”

“일하는 게 좋아요.”

“운전하는 게 좋아요.”

“밭매는 게 좋아요.”

“그런 게 왜 좋아?”

“재밌어요.”

“재밌어? 밭매는 것도?”

“네. 힘 하나도 안 들어요.”

앞뒤 생각하고 나온 말이라기보다는 저를 위로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이니 따져 묻지 말고 그냥 ‘어른도 좋구나.’하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되어서 애들하고 재밌게 놀아요.”

“어린이 친구도 되고 선생님도 만나요. 회의도 하고.”

공부 시간엔 아이들이랑 놀고, 쉬는 시간엔 선생님들 만나고, 가끔 회의도 하고... 아이들이 생각하는 저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겠더군요.

“그리고 어른이 되면 사고 싶은 걸 다 사요.”

“맞아. 돈 버니까.”

“되고 싶은 게 벌써 되어 있어요.”

어릴 때는 꿈이 있어 좋지만 어른이 된 사람들은 이미 꿈을 이루었을 거 아니냐, 그러니까 좋을 거다 그거지요. 어쨌거나 이 토론의 결말은 나이가 많든 적든 ‘둘 다 좋다.’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 * *


지난번에 온양에 엄마를 뵈러 갔을 때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노인학교에 가면 내가 제일 막내다. 심부름은 내가 다 한다.’ 하시더군요. 아이들은 저를 어른이라 하지만 거기에 비하면 제가 어디서 감히 어른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제 위에 어른들이 계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어른들 안 계시면 어려운 일 있을 때 누구한테 물어볼지를 모르겠더라구요. *^^*


200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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