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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Feb 29. 2024

순이한테 그러면 안 된다.

순이는 우리 집 개다. 한 달쯤 전에 새끼를 낳았다. 우리 집 개들은 마당에서 산다. 개들은 개들의 집이 있다. 세 마리는 진돗개고 순이는 무슨 종인지 모르는 작고 날씬한 개다. 진돗개들 사이에서 몸집 작은 순이가 잘 살아내고 있다. 덩치로 보아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네 마리 개들 중 순이가 제일 곤란하다.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나섰을 때 제일 먼저 시작해서 끝까지 달라붙는 게 순이다. 기껏 차려입은 옷에 발자국을 이리저리 찍어 놓는다. 퇴근해서 차에서 내릴 때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그때는 들어가서 바로 옷을 손질하면 되어서 크게 나무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출근길 배웅은 고맙다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가방을 내 몸 주위로 흔들면서 달려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순이를 방어하는데 신경 쓰다가 엉뚱하게 랑이나 호야에게 당하기도 한다. 송이는 먼저 청이와 토리가 그랬던 것처럼 한 발짝 떨어져 기 때문에 굳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며칠 전 출근길의 일이었다. 사정을 잘 아는 남편이 개들을 불러갔다. 그런데 순이는 안 가고 나한테 왔다. 그러고는 반갑다고 달려드는데 나는 발 도장 찍히지 않으려고 ‘저리 가’하면서 밀어냈다. 그때 순이가 한걸음 물러나면서 작게 으르렁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주 작고 짧은 말이었지만 순이가 나한테 화를 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출근길이었다. 순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내가 가는 길에 앉아있었다.

‘이제 나한테 달라붙지 않기로 한 건가?’

아지들 젖먹이던  품이 추워서 그런가, 최대한 등을 굽혀 가슴에 닿는 한기를 막으려 웅크린 것이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추우면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나와서 저렇게 추워하다니... 생각해 보면 순이는 우리 집에 온 날 이후 줄곧 나를 따랐만 나는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우리 집 개들은 다 남편의 개들이고 나는 밥 한번 주는 날이 없다. 그러니 개들이 나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순이는 처음 우리 집 왔을 때 남편에게는 바짝 곤두세우고 경계를 했지만 나에게는 꼬리를 쳤다. 그런 개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내가 순이에게 이제껏 준 사인은 ‘나한테 다가오지 마.’였고 순이는 참 줄기차게도 나를 쫓아다녔다.


순이의 먼저 주인은 홀로 사는 할머니였다고 들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게 되어 보호소에 맡겨졌고 그걸 본 우리 사촌 시누이가 보호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구해냈으나 자기가 키울 수 없어서 우리 집에 보낸 것이다. 할머니와 살았던 세월이 있어 순이에게는 밥과 물을 챙겨주는 새 주인인 남자 인간보다 나이 든 여자 인간이 더 익숙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집의 여자 인간은 그 정들었던 할머니와는 다르게 아침이면 나와서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가 저녁에 와서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 동안에만 볼 수 있는데 그나마도 저리 가라고 손을 휘휘 내저으니 순이로서는 영문을 몰랐을 것이다.      


저녁에 퇴근해서 차에서 내렸는데 랑이 송이 호야만 있었다. 내가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순이 어디 있어요? 안 나왔네!”

“아마 새끼들한테 있을걸?”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이제 나를 반겨주지 않기로 했을지도 모르겠다. 순이의 설레발이 없으니 걷기는 편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에 한 번은 호야가 덩실덩실 달려들어서 내가 쫓아냈더니 순이가 호야한테 가서 으르렁하고 나무랐다. 나는 개들의 말을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순이가 다른 개들에게는 내가 싫어하는 짓 하지 말라고 혼내주면서 정작 자기 하는 짓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영 눈치를 못 채 한다는 것이다.

“순이 엊그제 나한테 화냈어요. 이제 나 안 쫓아다닐 건가 봐.”   

  

오늘도 출근 준비를 하고 무심코 현관문을 열었더니 개 네 마리가 다 달려들었다. 그러고 보니 네 마리였다. 남편이 개들을 불러가도 순이는 끝까지 내게 달라붙었다.

“순이, 알았어. 알았어.”

결국 내 코트에 발자국을 찍었다. 나는 피하고 순이는 달려들고, 상황이 며칠 전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어제 한번 안 나온 것은 사정이 있었나 보다. 나는 이래서 개들이 좋다. 조건 없이 따르고 변함이 없다. 그러니 그동안 순이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순이가 곤란하다는 것이지 싫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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