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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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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Nov 06. 2024

있을 때와 떠날 때

퇴직타령 4

오래 교직에 있으면서 퇴직하는 선배들을 많이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퇴임사가 셋 있다.




*이제까지 저는 2세 교육을 위해 힘썼습니다. 앞으로는...(잠깐 뜸 들이고 나서) 3세 교육에 힘쓰겠습니다.


오래전 같이 근무했던 이00 선생님, 남편이 정년을 맞이하자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명예퇴직(정년 전에 본인이 희망하여 하는 퇴직)을 신청했었다. 역시 교사로 근무하는 딸이 결혼해서 외손자가 생겼는데 퇴직하고 그 외손자를 돌봐주기로 하였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있지도 않은 나의 3세들을 생각했다. "나도 나중에 그렇게 해야겠다."




"퇴직을 하고 나면 그동안 공무원 신분이라 못했던 일들을 다 해볼 생각이여."


교육장까지 역임하셨던 당시 우리 교장 선생님, 생활과 스타일이 아주 멋쟁이셨는데 교직자신분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뭐였을까? 

그 뒤  년 지나 어디서 뵙게 되어 여쭤 보았다.

"퇴직하시고 나서 그동안 못해본 일 많이 하셨어요?"

"아녀. 관뒀어. 해보니 재미더라구."




"퇴직하시는 소감이 어떠신지?"

"아주 시원합니다. 섭섭할 거 조금도 없습니다."


나보다 3,4년 먼저 퇴직한 동기 장, 단호하게 섭섭하지 않다고 했다. 사실 그즈음 교장들이 어렵기는 했다. 안 해본 사람들은 교장 노릇이 하나도 어렵지 않은 줄 안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어려운 일이 많다. 학생교육은 물론이고 학교 내 안전문제, 근로 및 고용과 관련한 복잡다단한 문제들, 시설관리, 예산 및 지출관리, 각종 분쟁의 조정  정해진 답이 따로 있지도 않고 책임에 대한 부담이  무겁다.


그래도 나는 퇴직하는 심정으로 시원에 섭섭을 더하겠다. 나를 조건 없이 좋아해 준 아이들, 신뢰할 수 있었던 선생님과 교직원들, 학교를 믿고 지지해 준 학부모들, 나는 그 모든 관계에서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있을 때 잘하고 떠나면 잊어라.'

그동안 인사이동으로 학교를 옮길 때마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스스로 했던 이다. 이는 퇴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동안 고마웠고 이제는 잊을 시간이다.  잘못한 것도, 잘한 것도 모두 조용히 잊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경험상 이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를 그렇게 환영해 주던 아이들이 지금쯤 어쩌고 을지 안 봐도 뻔하다. 조르륵 새 교장선생님께 인사하려고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이것도 섭섭하지 않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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