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양선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monfresh Mar 18. 2021

쥐와 두더지

우리 집 개 토리가 또 쥐를 잡았다. 그런데 뭔가 좀 달랐다. 색깔이 아주 까맣게 보였다. 남편이 가 보더니 두더지라고 했다.
"두더지라고요? 아이구..."
두더지라니 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왜 쥐는 안 불쌍하고 두더지는 불쌍할까? 그 이유는 두더지는 귀엽게 생겼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한 번 두더지를 본 적이 있다. 언덕길을 뽈뽈뽈 기어 올라가고 있었는데 털이 까만 빌로드 같이 윤기 있고 조그만 엉덩이가 토실토실했다. 두더지는 햇빛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다는데 무슨 일로 나왔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두더지 실물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런 두더지가 우리 집 마당에도 있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토리가 이미 잡아버렸다.
"두더지가 얼마나 귀여운데... 아깝게스리...!"
"귀엽기는 하지. 그런데 그 피해도 쥐 못지않어."
무슨 피해가 있나 했더니 여기저기 땅굴을 파기 때문에 나무나 꽃, 작물 등의 뿌리가 상한다고 한다. 나는 이쁜 건 다 좋은 줄 알았더니 자못 해를 끼친다 하니 조금 놀랐다. 그래도 일단 두둔을 해 주었다.
"뭐 별로 많지도 않은데..."

아마도 쥐가 들으면 엄청 억울하겠다. 하지만 쥐는 정말 싫다. 쥐도 집 옆으로 굴을 여러 개 파 놓았다. 가끔 전기 상태가 불안정하면 쥐부터 의심이 든다.
"혹시 쥐가 전선 쏠은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지."
어느 날은 또 어디로 들어갔는지 천정 속에서 마감재인 루바를 독독 긁고 있다.
"당신 퇴직해서 시간도 많으니 쥐 좀 잡아보세요."
퇴직만 하면 이일 저일 다 해준다더니 맨날 난 화분만 돌보고 차일피일 미룬다. 그리고 쥐 소탕 문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하다. 인간이 쥐보다 우월한지는 몰라도 직접 상대해 보면 쥐도 만만치가 않다.

설령 우리에게 피해가 없다 해도 나는 쥐가 싫다. 특히 가늘고 기다란 꼬리가 싫다. 그런데 두더지는 생김새로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다만 토리는 귀엽고 어쩌고는 상관하지 않으니 공연히 얼쩡대지 않는 게 좋다. 더구나 두더지는 어두운 데서는 잘 보아도 밝은 데서는 시력이 나쁘다니 토리가 두더지를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다.

남편이 죽은 두더지를 치우고 나서 토리 머리를 쓸어주었다. 내 생각에는 토리가 두더지를 봐주면 좋겠지만 두더지들도 개 무서운지는 아는 게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 걱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