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보고 듣고 맛보다> 전통무예- 국궁
지난 2020년 7월, 활을 쏘는 궁사들이 두 팔 들어 반길 만한 일이 있었다. 국궁이 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된 것이다. 선사시대로부터 우리의 전통무예로 전승된 ‘활쏘기’가 이제야 무형문화재로 등록됐다니 늦어도 한참 늦은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니 다행스런 일이다. 국궁이란 무엇인지, 활쏘기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활쏘기'하면 누구나 곧바로 떠올리는 그림이 있다. 2000여년 전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수렵도>다. 그런데 이보다 5000여년 앞선 7000여년 전의 선사시대 유물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도 활을 쏘는 사냥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손에 활을 들고 사슴, 늑대 등을 겨누고 있는 이 사냥꾼 그림은 우리나라 활의 역사를 구석기 후기까지 끌어올리는 생생한 증언이다. 활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사냥도구였고, 수렵뿐만 아니라 고대 인류의 전투 무기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웅의 이야기에는 활쏘기가 나온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이름도 '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려니와 김춘추, 김유신, 이성계, 이순신, 정조 등 역사에 남은 인물들은 모두 활쏘기의 명수다. 특히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던 시대에, 활쏘기는 심신단련과 함께 호국정신의 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활쏘기는 더욱 장려되어 선비들은 정신수양의 도구이자 오락거리로, 민간에서는 유희용으로 활쏘기를 즐겼다. 선비들은 '육예(六藝- 禮, 樂, 射, 御, 書, 數)'라 하여 사대부들이 갖춰야 할 6가지 기본 소양에 활쏘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활쏘기를 게울리 할 수 없었다. 신분이 낮은 백성들은 너른 벌판에 나뭇가지 두 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솔포'라 부르는 오늘날의 현수막과 같은 두꺼운 포목을 매달아 걸어놓고 활쏘기를 연습했는데 이를 '벌터질'이라 불렀다. 구한말 외국인의 기록에는, 어린아이나 여자들도 활쏘기에 능했다고 적혀 있다. 군사적으로도 활은 조선군대의 제식무기였기 때문에 활과 화살이 다양하게 발달하고 사용되었다.
이렇게 민족의 전통 스포츠였던 활쏘기가 한동안은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된 적도 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구식군대가 해산되기 시작해 궁술이 설 자리를 잃고, 이후 갑오개혁(1894년) 때는 과거제마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제에서 시행하는 무과 시험은 사대부만이 응시할 수 있는 문과와는 달리 몰락 양반이나, 서얼, 평민도 응시할 수 있는 입신양명의 기회였기 때문에, 과거제 폐지는 활쏘기에 큰 타격이었다. 한량들이 사라지고 활쏘기의 맥이 끊어지면서 활쏘기는 민간에서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9년 6월 독일 하인리히 친왕이 대한제국을 방문했을 때를 기점으로 활쏘기가 다시 부활하게 된다. 고종이 장안의 이름난 궁수들을 불러 활쏘기 시범을 행했는데, 하인리히 친왕이 조선 활쏘기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이에 고무된 고종은 궁술을 장려하는 칙령을 내리고 궁술 장려를 위해 경희궁 북쪽에 '황학정'이라는 활터를 지어 조선의 대표 수사정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활쏘기는 군사기술이 아닌 체육활동과 취미로서 장려되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중후반부에는 치안을 핑계로 궁술이 위협받기도 했으나, 전국에 산재한 활터의 사조직(射組織)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계승되었다. 활쏘기는 현재 전국의 활터가 400여 개소에 이를 정도로 우리나라 전통 스포츠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활쏘기는 보통 사정(射亭)이라 부르는 활터를 중심으로 배움과 습사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활터의 역사는 곧 활쏘기의 역사로 이어진다. 수백에 이르는 전국 활터들이 제각각 지역특성에 맞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꼭 언급해야 할 활터 두 군데가 있다면 서울의 황학정과 전주의 천양정이다.
국궁의 종가(宗家) 황학정
서울 인왕산 등산로에 위치하는 황학정은 대한제국 때 고종의 명령에 의해 세워진 사정(射亭)으로, 갑오경장 이후 끊어진 국궁의 맥을 부활시킨 곳이다. '황학'이란 이름은 고종이 황색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이 마치 학과 같았다 해서 붙여진 것. 황학정의 초대 사두(우두머리, 수장)도 고종이다. 황학정을 중심으로 발족된 <조선궁술연구회>는 조선 활쏘기의 맥을 잇고자 '조선의 궁술'이라는 교범서를 간행했는데, 이 책은 오늘날 전국의 사정에서 교범으로 삼고 있는 것이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근세의 활쏘기 관련서적이다.
황학정 국궁전시관은 우리민족의 활쏘기 역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상설 전시중인 <황제의 활>은 고종황제의 활 사랑과 함께 우리 활의 우수성과 특수성을 보여주는 유물들로 채워져 있다. 효시(소리 내는 화살), 동계살, 신기전, 편전과 통아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된 화살들을 볼 수 있으며, 세계 여러나라의 활도 소개해 서로 비교해볼 수도 있다. 활의 재료와 제작과정도 사진과 모형으로 설명해놓아, 국궁의 역사와 활의 기본을 이해하는 데 좋은 학습터가 되어준다. 이외에도 황학정에서는 활쏘기 체험이나 활 만들기 체험 등 일반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상시 진행하고 있어 국궁문화의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310년의 역사 천양정
한편 전주 다가산 인근에 자리한 천양정은 1712년(조선 숙종 38년)에 세워져 올해로 310년의 역사를 맞는 활터다. '천양'이란 이름은 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는 뜻으로, 이성계의 신묘한 활 솜씨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오래된 역사를 증명하듯 천양정에서는 선생안(先生案)과 선생헌(先生軒), 고풍스런 현판과 편액, 주련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선생헌은 선생안과 지난 선인들의 존영이 보존되어 있는 곳을 말하는데, 선생안에 이름을 올리는 착명식은 입사 후 2년간 사원으로서의 적격 여부에 따라 등록이 결정된다. 매년 5월에 열리는 대사회(大射會) 등 연중 치르는 제례의식과 연중행사가 천양정의 전통을 말해주고 있다.
천양정에서 근 30년간 활을 쏘고 있는 왕회석 7단은 국궁교본서로 <현대의 활쏘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명궁이다. 오랫동안 활쏘기를 하면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무엇인지, 또 활쏘기의 자세에서 특히 신경써야 할 것은 무엇인지 왕회석 명궁에게 물어보았다.
"선생헌 문앞에는 '소선계후(紹先啓後)'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선인의 뜻을 잇고 후예를 가르치다란 뜻이지요. 저는 활쏘기의 기본정신이 그 말씀 속에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집궁8원칙과 국궁9계훈도 그속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선인들 말씀을 따라 기본을 충실히 지킬 때 더 큰 발전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활쏘기 자세에 대해서는 힘을 좀 뺐으면 좋겠어요. 사원들의 활쏘기를 보면 상체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건 관중의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사법의 집궁제원칙에 흉허복실(胸虛腹實)이란 말은 가슴을 비우고 아랫배에 힘을 주라는 말입니다. 이는 복부와 괄략근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호흡을 내쉬면서 적당히 멈추고 서서히 활을 밀고 당기는 것을 뜻해요. 이때 목과 어깨에 힘을 주면 거궁하기가 더 힘들죠. 하지만 이런 자세가 하루 아침에 나오진 않아요. 매일같이 수련을 거듭하고 매시 반구제기(反求諸己)를 해가며 수련을 해야만 터득할 수 있습니다."
활쏘기는 스포츠로 즐기는 데 있어서 연령이나 성별의 제약이 거의 없는 종목이다. 활터에 사원으로 등록하고자 할 때 당사자의 이력을 보지만, 그것은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에 따른 것이다. 딱 한가지 제한이 있다면 남자나 여자 공히 65세가 넘으면 입사할 수 없다는 것. 그 나이에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근력에 무리가 따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전에 입사해 활쏘기를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초등학생이라 하더라도 활쏘기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활의 중량이나 강도는 몇 단계로 분류되어 있어, 팔의 힘이 약한 사람이라도 자기 힘에 맞는 활을 선택해 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지난해 집궁례(궁사로서 쳣발을 내딛는 의식)를 치른 궁사다. 활을 배우기 전에는 정말 걱정이 많았다. 국궁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만 앞설 뿐이지 팔힘도, 손아귀 힘도 없고 체력도 부실하며, 시력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팔 길이도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짧다. 그런데 활을 배우면서 보니, 그런 것들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활쏘기에 정진하려는 마음과 꾸준한 습사(훈련)만이 좋은 궁사가 되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활쏘기가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아주 좋은 운동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의 활터가 산에 근접하거나 산속에 있기 때문에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활을 쏘게 되고, 시위를 당기면서 바른 자세와 균형있는 신체감각을 절로 익히게 된다. 활을 만작(滿作)할 때의 자세는 단전호흡 뿐 아니라 근육의 긴장과 이완으로 내장기관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집중력이나 지구력, 근력 등이 향상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런 객관적인 효능이나 이점 외에도, 활을 쏘는 사람들은 보다 개인적인 충족감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른 새벽이나 어두운 밤 고요함 속에 시위를 매기는 기쁨, 하얀 눈발을 뚫고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 시위가 잘 매겨졌을 때 귓전에 울리는 맑은 소리, 과녁에 정확히 맞았을 때의 뿌듯함 등 궁사들에게는 각자 오롯하게 느끼는 활쏘기의 즐거움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은 가곡 <아무도 모르라고>의 가사처럼 깊은 숲속 아무도 모르는 샘물 같은 것이어서, 직접 산에 올라가 그 샘물을 맛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맛인 것이다. 그러니 그 맛이 궁금하시다면, 근처 활터를 방문해보시길 권한다. 활터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활쏘기라는 것은 활과 화살을 사용하여 표적을 맞히는 행위다. 그러나 과녁을 맞추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예법으로, 놀이로, 풍속으로 이렇게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궁도(弓道)에서는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어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활을 쏠 때 비로소 과녁에 적중되므로 정신일도(精神一到)가 경기의 요체라 이른다. 여기에서 정신이 하나로 가닿는 자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과녁이지만, 실제로는 과녁이 아니다. 과녁을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자리를 무심의 경지로 비어있게 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그래서 활쏘기는 과녁을 맞추는 행위를 뛰어넘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어깨와 허리를 올곧게 세우고 땅을 단단하게 디디고 선 자세,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호흡, 들숨과 날숨의 조화, 정(靜)과 동(動)의 균형에 따라 유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발사되는 화살. 이 동작들을 몸에 익히면서 우리는 화선지에 먹이 번지듯 궁도의 정신을 몸에 새기게 된다.
활을 쏘는 사람들은 적중(的中) 여부에 상관없이, 정성을 다한 그 동작만으로도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호연지기의 기운을 호흡한다.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을 배운다. 내 화살이 날아가는 자리는 궁극적으로 어디인가. 시선의 끝에 마음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