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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환상으로 만드는 법 -빅 피쉬
- 그때 그 영화
by
김소형
Mar 13. 2022
삶이 하나의 멋진, 환상적인 이야기라면 좋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와 놀아주고 또 밥을 하고...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 묻혀 지나가고 있는 이 지루한 날들이,
아, 신기하고 멋진 이야기라면 좋을 것이다.
<빅 피쉬>는 그런 이야기였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로 만든 이야기였다.
비디오 상자의 환상적인 나무 그림과 뒤편에 적혀있는 간단한 줄거리만 보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결국 새벽 네시가 넘게까지 나를 잠 못 자게 하고야 말았다.
이야기꾼 아버지가 만들어낸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들은
고장난 녹음 테이프처럼 끝도 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에 진저리를 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임박해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삶이 그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수놓여져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해주는 아들. 아들이 해주는 이 마지막 이야기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해준 모든 이야기들의 결정체이다.
내내 잘 보다가 아들의 이야기에서 좀 울었다. 분명 동화를 넘어서 환상의 세계로
넘어가고는 있지만, 그 한가운데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이 박혀있는 것이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그 신기한 물고기를 잡았던 아버지.
그것도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로! 아버지는 강으로 돌아가면서
(현세에서는 죽음이 되겠지만) 아들과 아내에게 그 반지를 돌려준다.
'사실'을 찾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내보인 것은 '꿈'이라는 소금과 '환상'이라는 후추가
뿌려진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줄기를 가진 백가지, 천가지의
이야기들이었던 것을. 어떤 장식으로 어떻게 꾸며놓았든간에 그것은 같은 나무였던 것이다.
평생 늘 목 말라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아들은 아버지가 그 물고기였음을 깨닫는다.
삶을 이야기로 만들다 못해 나중엔 스스로 이야기가 되어버린 아버지.
아들은 물고기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시 자신의 아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세심한 사람이라면 하나하나의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비유와
그 속뜻을 좀 더 음미해볼 수도 있으리라. (나는 대충 건너뛰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실려있는 멋진 영화평만을 떠올리면서 너무 성급하게 감동을 기대하다간
실망할지도 모른다. 과장된 에피소드로 흘러가는 이 영화의 중반을 넘어서야만
이야기가 현실화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밤늦은 시간 <빅 피쉬>를 보고 또 이 감상문까지 쓰느라 눈이 침침, 정신이 몽롱하다.
분명 내일 아침 제 정신 차리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으리니, 이만하면 추천에 열을 올릴 만한 좋은 영화 아니겠는가.
* 이 글을 쓴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세세한 줄거리에 대한 기억은 다 사라졌다. 환상과 꿈의 조각들이 누비옷 같았다고 떠올릴 뿐이다. 누구에게든 현실은 앙상한 것.. 패치워크가 왜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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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 대한 생각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동화도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은 다를까요? 내 이름과 나는 다를까요? 내가 쓰는 것과 나는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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