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를 얹은 활과 시위를 부린(내린) 활. 내가 반한 활은 이런 카본활이 아닌 전통 활로서 모양도 좀 다르다.
“전 국궁을 해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대부분 되묻는다.
“국궁요? 활요?”
그다음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질문도 역시 비슷하다.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국궁이 일상적인 스포츠는 아니다 보니 나오는 반응일 테지만, 대답하는 것도 쉽지 않다. “활한테 반했어요”가 가장 맞는 말이겠지만, 그 말로는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아 대답을 이렇게 바꿨다.
“제 글의 주인공이 활을 쏘거든요.”
거짓말은 아니다. 활을 쏘는 아이로 이야기를 구상하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을 얘기하자면, 글을 구상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활에 마음이 쏙 빠져 있었다.
우연히 활쏘기에 대한 자료와 사진을 찾아보면서 나는 활을 마음속에 그렸다. 전통 활은 시위를 걸지 않을 때는 초승달처럼 둥그스름하게 휘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만궁(彎弓)이라 한다고 했다. 그 모양과 생김새가 내겐 너무도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활은 더없이 부드럽고 더없이 매서운 것을 한 몸에 갖춘 어떤 것이었다. 글 속에선 나 대신 주인공이 그랬지만, 나는 상대방을 만나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았다.
해찬의 활을 가끔 눈으로만 황홀하게 어루만졌던 금이였다. 대나무에 소힘줄을 아교로 잇대 붙이고, 현과 맞닿은 곳은 물소뿔을 붙인 해찬의 활은 아름답고도 강인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슴이 두근거린 건 금이보다도 나였다. 남자나 여자가 멋진 이성을 보고 홀리듯이, 나는 활 자체에 홀렸다. 몸체의 만듦새, 휘어진 모양과 탄성... 다 그랬다.
“그래, 나도 활을 배우는 거야!”
결심은 쉬웠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활은 다른 운동에 비해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데(그 이후엔 오히려 들어가는 비용이 별로 없다), 그 부분은 넘어간다 하더라도 신체적인 부실함에 대한 걱정이 눈앞을 가렸다. 나는 시력도 나쁘고, 팔도 짧고, 손아귀힘도 없고, 몸도 다부진 편이 아니다. 이런 불량 체력이 활을 쏠 수 있을까?
활터에 가서 기웃거리니 그곳에 앉아 계시던 분들이 “어떻게 오셨어요?” 물었다. 사실 활터 사원이 아닌 여자가 혼자 활터에 들어오는 일은 흔치 않다. 여자든 남자든 대개 누군가의 소개로 오는 일이 많아, 그 누군가와 같이 오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무엇? 씩씩함!
나는 최대한 몸을 부풀리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활 배우려고요.”
내 결심과는 상관없이 가까운 곳에서 반대가 심했다. 남편은 달밤에 무슨 체조냐며, 활은 당신한테 맞지 않으니 요가를 하거나 필라테스를 하거나 수영을 하라고 했다.
“그럼 나 밸리댄스 배워도 돼?”
배꼽 내놓고 춤춘다고 질색할 게 뻔한데, 활을 배우느니 차라리 밸리댄스를 배우란다. 그래도 내가 활을 배우겠다고 우기자, 그럼 팔굽혀펴기로 활을 배울 수 있는 체력을 증명해 보이라 했다. 10개씩 4세트, 총 40회를 네 번에 나눠 2분 안에 해내라는 게 미션이었다.
“그래, 해보지 뭐!”
하지만 나로선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팔굽혀펴기를 올바른 자세로 제대로 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2~3개월을 끙끙거리다가 활터에 가서 궁사님들에게 물어보았다.
“활 쏘는데 팔굽혀펴기를 잘하면 도움이 많이 되나요?”
“팔힘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팔굽혀펴기를 잘한다고 활을 잘 쏘게 되는 건 아니에요. 쓰는 근육이 다르거든요.”
궁사님 한 분이 활 쏘는 자세와 팔굽혀펴기 자세를 비교하면서 설명해주셨고, 나는 속으로 야호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몇 개월간 계속 훔쳐보기만 했던 활터에 드디어 입사를 했다.
'이제 나도 활을 배울 수 있어!'
내가 활을 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어깨를 쫙 펴고 활터에 들어섰다. 신이 나서 목소리도 절로 크게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사대(활을 쏠 때 서는 자리)에 나가려 준비하던 궁사님들이 웃으며 반겨주셨고, 그렇게 나는 활쏘기의 첫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