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활을 쏘는 자리)에서 궁사들이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면 ‘딱~!’ 하는 맑은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너무나 듣기 좋아 그 소리를 일컫는 이름이 따로 없는지 물어보았다. ‘목성’이라고 한단다. 화살이 과녁에 맞는 소리, 공간을 뚫고 소리없이 날아가는 화살이 그 존재를 명징하게 확인시키는 소리, 목성.
과녁을 둘러친 담장 너머로는 빌라 한 채와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나는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창문만 열면 언제라도 목성을 들을 수 있으니까. 나중에 들으니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소음’인 모양이었다.^^
과녁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사대에서 과녁은 145m다) 시력도 나쁜 내가 과녁을 맞출 수 있을까 걱정했더니 선배 궁사님들이 안심하라 이른다.
“국궁은 양궁과 달라서 과녁 전체 아무 곳에나 맞기만 하면 돼요. 과녁은 보이잖아요.”
그렇다. 양궁은 과녁의 중심에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지만 국궁은 과녁의 커다란 네모판만 맞추면 된다. 그래도 너무 멀잖아, 나는 심호흡을 했다. 사실 초보에게 과녁은 한참 뒤에 생각해도 되는 먼 얘기다. 당장 손에 든 활을 당겨야 하니, 과녁까지의 거리보다 활까지의 거리가 먼저다. 당길 줄이나 알아야, 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활쏘기를 연습하는 일은 ‘습사’라 한다. 같이 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주일에 서너 번씩 습사를 했다.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니 남자가 세 명, 여자가 네 명이다. 우리 기수에 여자들이 많이 왔다곤 해도, 이 정도면 활쏘기에서 이제 성별을 따질 수 없겠구나 싶었다. (가끔 느끼지만, 활쏘기에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첫 시간은 이론수업으로 국궁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활을 잡을 때 지켜야 할 8가지의 원칙이 있는데, 두 구절씩 짝을 이루는 한자숙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활을 쏠 때 기본 자세를 뜻하는 말이므로 여기 다시 옮기면서 마음에 되새긴다.
<집궁 8원칙>
● 선찰지형(先察地形) 후관풍세(後觀風勢) : 사대에 서면 먼저 지형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 바람을 본다
● 비정비팔(非丁非八) 흉허복실(胸虛腹實) : 발디딤은 정(丁)자도 아니고 팔(八)자도 아닌 어깨 넓이로 벌려야 하며, 가슴은 비우고 단전에 힘을 주어야 한다.
● 전추태산(前推泰山) 후악호미(後握虎尾) : 줌손(앞손)은 태산을 밀듯 힘있게 밀고, 깍지손(뒷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듯이 맹렬히 당겨야 한다.
● 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제기(反求諸己) : 화살을 쏘아 맞지 않거든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반성해야 한다.
처음 이 8원칙을 읽었을 때는 이 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원칙이 활을 잡을 때마다 마음에 바로 새기면서 실행해야 될 일임을 안다. 여기에는 활을 당기기 전과, 당길 때와, 당긴 뒤의 몸과 마음의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자 활쏘기의 본체다.
궁도 9계훈이라 하여, 활 쏘는 이가 지켜야 할 9가지의 마음가짐을 말한 한자숙어도 있으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지조 있게 행동하는 일은 개인의 인격수양 정도에 따른 것이니 어찌 활쏘기에서뿐일까. 9계훈은 생략하기로 한다.
활은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 또 활을 잡는 앞손의 자세와 시위를 당기는 뒷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다리는 어느 정도로 벌리고 어떻게 서면 좋을지, 사범님이 시범을 보여주셨다. 다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열심히 따라 했다. 처음으로 활을 당기는 연습을 할 때는 화살을 매기지 않고 빈 활을 당기는 연습을 한다. 비교적 가벼운 연습용 활이라는데도 어깨가 뻐근했다. 여자들은 30~35파운드 연습용 활을 사용했는데 환산하면 13~15kg 남짓 되는 무게다. 남자들은 그보다 조금 더 무거운 활로 연습했다. 무거운 활일수록 시위를 당기는 장력이 세져서 그만큼 더 힘이 든다.
당겨지지 않는 활을 끙끙대고 잡아당기면서 속으로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렸다. 전추태산 후악호미, 앞으론 천하를 밀고 뒤로는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하랬지... 보이지 않는 호랑이 꼬리를 열심히 상상하면서 팔을 뻗었다. 언제쯤이면 내 화살도 그 아름다운 소리, 목성을 낼 수 있을까.
아직 내 활쏘기는 꿈속에 있다.
<tip>
활쏘기 훈련은 개인 교습이 아닌 단체 교습으로 이루어지는데, 활터에 입사한 이들이 다섯 명 이상 모이면 시간을 맞춰 교육시간을 정한다. 사범은 활터 궁사님 중에서 한 분이 맡아 해주시며, 초심자들은 활쏘기의 이론과 실기뿐만 아니라 집궁례까지의 전 과정을 모두 사범과 함께 하게 된다. 이론은 활터의 역사와 우리나라 국궁의 역사, 사정(射亭) 예법, 활과 화살의 명칭 등에 관한 것이며 실기는 빈 활 당기기와 주살질(대나무에 줄을 매달아 화살을 묶어놓고 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활쏘기의 기본자세가 잡히면 활을 잡는 예식(집궁례)을 치르고 궁사로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