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활쏘러 간다> 3
맨손운동이 아니라면 어떤 운동이든 도구가 필요한 법. 국궁에서 사용하는 도구는 많지 않다. 활과 화살만 있으면 된다. 여기에 꼭 필요한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깍지’다. 깍지, 그러면 콩깍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국궁에서의 깍지란, 활을 쏠 때 시위를 잡아당기기 위해 엄지손가락 아랫마디에 끼는 뿔로 만든 기구다.
바로 이렇게 생겼다.
사람마다 엄지손가락 굵기가 다르니 깍지의 크기도 다 다르다. 구멍 안에 끼워져 있는 가죽끈은 깍지와 손가락 사이의 틈을 메꿔주기 위해 있는 것이다. 가죽끈이 있어야 시위를 잡아당길 때 깍지가 헐렁하게 늘어지거나 풀어지지 않는다. 활을 쏘는 데 깍지는 작지만 꼭 필요한 장비. 이것이 없으면 활을 쏘지 못한다. 왜? 손가락이 아파서 시위를 그만큼 세게 당기지 못하니까.
여자들이 옷 욕심을 내듯 궁사들도 장비 욕심을 내는데, 장비라 해봐야 활과 화살, 깍지 (여기에 깍지손 보호대) 정도니 욕심을 부려봐야 소박하다. 물소뿔(또는 한우뿔), 매머드 상아, 대모갑 등은 최고급 재료고 흑단과 대추나무, 유창목 등은 그보다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재료다. 그밖에 여러가지 단단한 나무들이나 당구공, 아크릴 같은 것도 재료로 사용되고, 반짝반짝 황동이나 은으로 만든 것도 있다. 내 깍지는 젤 소박한 축.
왕초보가 무슨 깍지 욕심~! 그러고선 다른 궁사분들의 멋진 깍지에 "오~!" 감탄사만 날렸다.
멋지긴 하더라~^^
활과 화살, 깍지를 구입함에 있어서 국궁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파는 곳이 정말 없다는...! 깍지는 손에 직접 끼워보고 사야 하기 때문에, 직접 깍지를 깎아 만들지 않는 한은 구입처에 찾아가야 한다. 큰 대회 때면 대회장 근처에 깍지를 파는 이들이 오기도 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라면 파는 곳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 내 깍지도 자동차로 1시간은 달려가서 사왔다.
하긴 활이나 화살도 그렇긴 하다. 처음 활은 키와 몸무게, 팔길이를 가늠해 활터에서 단체로 주문했지만 (그렇게 구입해 사용해보니) 웬만하면 활 만드는 장인에게 직접 찾아가 구입하는 것이 좋겠더라. 찾아가는 게 번거롭다면 팔 길이나 손의 크기 등 세세한 부분들을 짚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자신에게 잘 맞는 활을 살 수 있다. 나는 두 달 전 (길이가 조금 짧은 것으로) 두번째 활을 구입했다.
활도 그렇지만 깍지도 마치 옷 같은 느낌이다. 여자가 아무리 예뻐도 자신의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어야 예뻐 보이듯이, 깍지가 아무리 비싼 거여도 내 손에 딱 맞아야 내것이고 내 손에 잘 쥐어지는 활이라야 진짜 내 활이 된다.
다른 것도 다 그러지 않나. 남 보기에 멋지고 좋은 사람이 무슨 필요 있나. 내게 좋은 사람, 같이 있을 때 서로 시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인 거다. 가격 고하에 상관없이 내 손에 맞고 내게 편한 사람, 그게 좋은 깍지 아닌가.
<Tip>
깍지는 암깍지와 숫깍지가 있는데, 각기 손가락에 끼우는 방식이 달라서 시위를 당기는 방식도 조금 다르다. 어떤 식으로 힘을 주는 것이 자신에게 편한지 알아보고, 암깍지와 숫깍지 중 한쪽을 고르면 된다. 내 것은 숫깍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