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호 Sep 27. 2024

사각거리는

-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소리가 났어

뒤죽박죽에 머리를 담그고 있었는데

'사각'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어

나를 찔러대던 가시들이 얼음처럼 굳더니

사각거리는 조각으로 부서졌어

물컹이고 끈적이던 것들도 단단해졌어


이런 일이라니!

세상의 단어들이 '사각'이란 한 단어로 모여드네

물에 퍼진 푸른 잉크 한 방울처럼

'사각'이 온 세상을 먹어버리네


날아오르는 소리가

누워있던 조각들을 일으켜 궁륭을 만들었어

빛 조각들이 수많은 유리창을 두드린다면

이런 소리가 날 거야

우리가 속삭여도 이런 소리가 날 거야

입속의 어둠을 부서뜨리네

깃털을 물고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


태초의 단어는 이렇게 가벼웠을 거야

내게 투, 투, 라고 말해봐

아무거나 말해봐


소리들이 갉아먹고 있어 책상을 의자를 커튼을

물잔 속에서처럼 뒤섞이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지!

서로 부딪치면 소리들은 잘게 부서져

웃는 소리처럼 들리네


내 얼굴이 투명해지고 있는데

봤어?

사각거리는 그물 속에서

나는 애벌레처럼

입을 오물거리고 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