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다
보통 책 하나를 기획하고 최종 탈고를 하려면 평균 3년 정도가 걸린다. 그렇다. 내가 최근에 내는 책들은 대부분 3년 전에 기획하고 쓰기 시작한 것들이다. 물론 그 기간을 견디며 글을 쓰는 것이 쉬운 과정은 아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적당히 마무리를 하자는 생각이 들면서, ‘유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3명의 손님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정도 썼으면 됐잖아?”라는 유혹이 첫 손님이다. 매우 강렬한 유혹이라 그의 말에 모든 것을 멈추려는 순간, “작가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아, 이 책은 반드시 사야 되는 책이다!’라는 마음에 바로 서점에 달려갔다.”라고 말하던 고마운 분의 표정이 떠올라 바로 생각을 바꾸게 된다. “끝은 아직 멀었다. 내가 쓴 글이 스스로 끝이라고 외칠 때까지 더 써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6개월에 지나면, 다시 두 번째 손님이 찾아온다. 거듭되는 수정에 지친 내게 그는, “적당히 수정해, 누가 그렇게 자세하게 읽겠어?”라고 말하며 이제 그만 멈추라고 유혹한다. 그때 또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들은 내게 늘 이렇게 말해주었다. “저희 집에는 작가님 책만 따로 보관하는 장소가 있어요. 작가님 코너를 보면 마음이 예뻐져요.” 그 봄바람처럼 예쁜 음성에 나는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명령한다. “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적당히 쓴 글을 전할 수는 없다. 최선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가장 치명적인 마지막 손님이 남았다. 그는 “이제 정말 그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유혹하며 내게 탈고를 선언하라고 말한다. 지친 나는 이제 그게 유혹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을 보고 싶다는 욕망에 거의 탈고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간다. 그러나 그때 또 한 사람이 나타나 내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작가님 책을 읽고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어요. 저희 가족들은 매일 작가님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그가 들려주는 그 피아노 소리처럼 아름다운 말에 나는 결국 눈을 감고 이런 생각에 잠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나는 마치 이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처럼, 지금까지 쓴 원고를 섬세하게 다시 읽으며, 그 안에 내가 가진 가장 값진 마음을 녹여 담는다. 글에 심장을 이식한다는 생각으로 한 줄 또 한 줄 다시 읽는다.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가장 오래 가장 깊게 생각한 사람이
결국 가장 따뜻한 글을 완성할 수 있어서다.
그 지점에 도착할 방법은 오직 하나다.
중간중간 멈추라는 강렬한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그걸 이겨낼 힘을 전해줄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