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의 여름

여름 같은 사람 혹은 사랑

by 유빈

짧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주인공 채리티 로열은 '산' 출신으로 시골 마을의 변호사인 로열에게 입양되어 자란 소녀이다. 그녀는 무료하고 답답한 시골 생활에 지쳐가던 중, 도회적이고 젊은 남성인 루시어스 하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 사랑은 그녀에게 처음이자 가장 치명적인 경험이 되고 사회적 제약과 남성 중심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임신하게 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마지막엔 그녀를 입양한 변호사 로열과의 결혼으로 귀결된다.


채리티에게 하니는 가장 짧고 뜨거운, 자유와 욕망을 보여주는 여름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채리티는 순종적인 여성상이 아닌 욕망을 느끼고 표현하며 그 대가를 치르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어쩌면 여름 같은 사람은 하니가 아니라 채리티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책이 쓰인 당시에는 여성 욕망을 금기시하기도 했기에 도전적인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채리티의 출신은 작품 내에서 아주 업신여겨지는 '산' 출신이다. 하지만 하니는 뉴욕에서 뉴잉글랜드의 건물을 연구하러 온 건축가였다. 이 사회적 계급 차이도 크게 작용하며 하니가 탈출이자 자유였던 채리티였지만 결국에 그녀는 자리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니와 헤어지고 하니가 편지를 쓰라며 준 뉴욕 주소를 보며 영영 먼 것 같은 거리감을 느끼는 채리티를 보면서 구체적인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도 벌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해당 소설에서 주요 논점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하니가 채리티를 어떻게 생각했던 것이냐는 것이다. 하니와 채리티가 만나던 장소에 로열이 찾아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 집이 결혼해서 로열 양을 데리고 올 집인가?" 묻는 장면이 있다. 하니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로열 양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마치 어린아이인 양 말하는 건 좀 우스꽝스럽지 않습니까?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그녀 마음대로 오고 가고 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그 후에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압박하지만 하니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로열은 자네가 왜 저 애한테 결혼하자고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잘 안다고 하였다. 그 후 하니는 떠났다.


하니가 떠날 때에는 약혼을 정리하고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하지만, 채리티는 믿으면서도 내심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둘의 이전 여행에서도 채리티가 원하던 도시에서의 여행을 하니는 내켜하지 않는 점, 간혹 같이 있을 때 채리티가 하니에게 느꼈던 서늘함과 거리감이 사실 둘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복선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하니조차도 자신의 한계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태도가 아닐까? 그래서 하니가 채리티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는 주장과 사랑하긴 했지만 사회적 조건과 책임감에서 도망친 것이라는 해설로 나뉜다.


내 생각으로는 하니가 채리티에게도 찰나이지만 감상적인 사랑이었다. 낭만적이지만 구조를 개혁할 정도로 급진적 인물은 아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다. 채리티가 작품 내에서 마냥 순진하고 바보 같은 인물이 아니다. 그녀도 내심 이 모든 게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암시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끝내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상황을 바꾸어 바라볼 줄 아는 삶의 태도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채리티가 느꼈던 여름의 열기, 변화, 자유 등은 하니와 함께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며 하니 또한 진심이었기에 그런 경험을 함께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모욕을 당한 채리티가 짐을 싸 '산'으로 떠날 때 채리티가 떨어뜨린 자신의 편지 더미를 들고 쫓아와 달래주는 장면을 봤을 땐 사실 어떻게 이런 인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다. 순전히 내 취향인 장면이기도 했다. 사랑은 유한하고 복합적이다. 만약 사랑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모두 거짓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채리티는 자신에게 청혼하는 본인의 후견인 '로열'에 극 중 내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다, 후반에선 그와의 결혼을 받아들이고 "아저씨도 훌륭하세요."라며 긍정적인 입장으로 태도를 바꾼다. 임신을 한 채 '산'에서 채리티가 느꼈던 어려움, 고독함, 무력감을 현실적으로 절감하는데 이에 따른 체념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성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채리티는 교육, 자산, 사회적 배경도 없는 인물이고 그나마 하니가 줄 수 있었던 '탈출'도 임신과 함께 무용해졌으며 '산'으로 올라가던 건 해방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실질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했던 길이었다. 사실 로열과의 결혼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생존의 방안'이었다. 자유로운 삶이 아닌 생존을 위한 타협. 꼭 이러한 경우와 상황이 아니더라도 냉정한 현실을 맞닥뜨리는 경험은 모두 있을 터라, 그런 개인적 경험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채리티는 로열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모든 걸 포기한 채 체념하는 태도를 지니진 않는다. 누군가는 합리화하는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를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로 재해석하며 자신 안에 남은 책임감과 모성의 감정으로 선택을 감당한다. 이 선택은 아름답지도 않고 고결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삶의 일부 같았다.


다들 각자의 삶에서도 여름과 같은 사람이나 사랑이 있나?

내가 여름 같았던 시절도 있었나?

나에게도 있었나?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인상적이던 구절도 몇 가지만 추려왔다.


그의 슬픔으로 인한 슬픔이 채리티의 목구멍에 고였다가 두 눈으로 올라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실 별거 아니지만, 보면서 목이 메이다 울음이 나는 과정이 너무 생경하게 그려져 인상 깊었던 문장이었다.


그녀의 두 눈이 너무나 밝은 빛으로 가득 차 있어 주위의 모든 것이 하나같이 희뿌옇게 보였다.

채리티의 도파민까지 느껴지는 듯한 대목이었다... 해당 문장 전후로 사랑에 빠진 채리티의 들뜸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다.


채리티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니에게 주었다. 그러나 삶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다른 선물과 비교한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채리티는 이런 일을 겪은 다른 젊은 여자들의 경우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모두 주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것 가지고는 짧은 순간밖에 살 수 없었다.

하니가 결혼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기도 전부터 사실 채리티는 이 관계의 유한함을 알고 있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였다. 이미 서로의 위치를 너무 잘 인지하던 채리티였음에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용기가 가상하기도 하였다.



너무 재밌게 읽기도 하였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느껴볼 수도 있던 소설이었다. 위 구절들 말고도 워튼이 자연과 감정을 묘사한 문장들이 눈앞의 홀로그램을 뿌리는 것처럼 경험시켜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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