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요조는 정말 인간 실격인가?

by 유빈

해당 책에 대한 안 좋은 비평, 후기, 독후감들을 여럿 보았다. 혹시 이 책을 읽어 본 당신도 요조가 인간으로서 실격된 삶을 살았고 그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동의하는가?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간 실격』은 1948년 발표된 소설로, 작가 자신의 삶과 내면을 강하게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자이 오사무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작성하였고 그의 자전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기도 하다.


『인간 실격』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주인공이 느끼는 극단적인 소외감이다. 요조는 어릴 때부터 타인을 이해하지 못했고 상호 작용 방식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 이 소외감은 '내가 인간이길 포기해야 한다는 것일까?' 하는 극단적은 결론으로 이어지고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고 스스로를 규정하게 만들었다. 요조는 타인 앞에서 '광대짓'을 하며 웃음을 선사하는 식으로 자꾸 자기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관심을 돌리려 한다. 이는 자기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거부당할 위험을 줄이려는 행위였다. 하지만 이런 위장과 가장은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해 병든 것과 같다. 『인간 실격』의 결말은 사실상 '삶의 파탄'으로 귀결된다. 요조는 극단적인 자살 시도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고 결국 사회와 떨어진 병원에 갇힌다. 실제 다자이 오사무 본인 역시 생전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를 하였고, 작품 발표 같은 해인 1948년 6월에 연인과의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때문에 『인간 실격』은 작가 개인이 겪었던 실전적 고뇌가 거의 투영된 기록으로도 읽힌다.


사실 작품 속 인간관계의 불화, 정체성의 혼란, 우울감 등은 현대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정서이다. 사회 속에서 '정상성'을 강요받으며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의 고독감은 지금 시대의 독자들에게도 깊이 와닿을 거라 생각된다.


『인간 실격』은 작가 개인의 극단적인 내면 고백임과 동시에 시대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작품에 대한 해석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요조가 정말 인간 실격 상태인가 아닌가'라는 논의를 넘어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시도도 많다.


그래서 요조는 '인간 실격'인가?

요조의 삶에 대한 평가로 우선은 정신병리학적인 해석이 있다. 정말로 정신질환이 있어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인 것이다. 요조의 '인간 실격' 선언이 단순한 도덕적 타락이나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병적 심리에 근거한 행동이라는 것. 실제로 극단적인 자살 충동, 대인 공포, 죄책감 등은 정신질환의 전형적 증상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는 "실격"이라는 말 자체가 요조의 병리적인 사고와 왜곡된 자기 인식의 결과물이고 적절한 치료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파멸로 치달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요조가 어릴 때부터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꼈다는 설정은 애착 이론이나 트라우마 심리학 측면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관점에서 요조는 '인간 실격'이 아니라 '애착 손상' 혹은 '발달 과정의 심각한 결핍'이 요조의 문제 핵심이라는 것이다.


다른 해석을 살펴보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사회 비판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인간의 자격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해석이다. 요조가 사회나 가정으로부터 이해나 공감,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인간 실격"이라 자각하게 되었다는 시각이다. 이 경우에는 작품이 '개인의 실패 기록'이라기보다 사회적, 제도적 결함에 대한 고발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실격"이라는 표현이 사실, 사회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압박, '정상적' 인간의 틀을 강요하는 시선과도 연결될 수 있다. 실제로 1948년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이고, 일본의 패전으로 많은 개인들이 가치관 붕괴와 혼란을 겪었던 시기이다. 많은 이들이 전쟁 중 내면화했던 가치나 윤리가 무너지고 새롭게 재편된 사회 질서 속에서 정체성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요조의 파멸은 시대적 무질서와 허무주의의 극단적 표상으로, 그를 '실격'으로 만든 건 전쟁의 상처와 전후의 혼돈이라는 해석이다.


이번에는 보다 철학적으로 해석해 보자. 사르트르나 보부아르 등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타자의 시선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문제를 다룬다. 요조 역시 주위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며 '광대짓'을 하면서 본래의 자기를 잃어버린다. "인간 실격"은 요조가 타인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다 본연의 주체성을 상실한 결과이자, 철저히 소외된 자신을 고백하는 말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인간 실격을 선언하던 순간, 요조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가깝게 다가간다. 허무주의적 분위기가 짙던 전후 일본에서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 개인이 느끼는 공포와 무력감은 곧 자기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인 독해가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다자이가 요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실격'이라기보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무의미에 대한 통렬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서는 자살 충동이나 파멸적 삶을 중심 테마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 실격』을 작가의 일종의 '유서'로 해석하려는 관점도 없지 않은데, 이때 "인간 실격"이라는 말은 작품 속 주인공에게 씌워진 문학적 장치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다자이는 『인간 실격』 집필을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텍스트 자체가 현실에서의 작가의 인생의 최종 선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내 생각에, 작품 속 요조가 자기를 "실격"이라 단정 지었던 것은 '사회적인 도덕적 기준' 혹은 '원만하고 균형 잡힌 사회적 인간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조가 어려서부터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과도하게 의식하여 본모습을 숨기려 하다, 이 과정에서 자기 존재의 왜곡이 일어났고, 세상에 맞추려던 그 애씀이 오히려 그의 방어기제를 무너뜨린 것은 아닐까? 결국 요조는 "나는 도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제대로 된 모습을 갖지 못했다"며 자책하지만, 이 기준이 결코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주관적이고 극단적인 자기 비하서 기인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요조가 작품 내에서 방탕하고 문란하게, 정말 쓸모없게 살아가는 것처럼 비치긴 하지만 요조가 남을 죽이고 해친 범죄자는 아니었다. 정말 요조가 사회에서 '공존할 수 없을 만큼의 인간'도 되지 못한 걸까?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저지르고, 무언가를 감추기도 하고 때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요조처럼 이를 받아들여 개선하려 하기보다, 아예 "난 안돼"라며 완전히 '실격'판정을 내려버리면 자기 성장과 회복의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도덕적 완벽주의 기준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뻔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지는가, 혹은 그다음에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가이다. 요조는 대체로 도망치거나 회피, 혹은 더 깊은 파멸로 들어가며 자책감을 해소할 길을 찾지 못한 채 극단적인 자포자기에 빠져버린다. 만약 주위 어느 한 사람이 그에게 "네가 한 실수가 곧 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요조 본인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실격'이라 부를 정도의 파국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또 한편으론,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나 가족의 태도가 문제일 수도 있다. 사회나 주변 인물이 누군가의 실패를 쉽게 단죄해 버린다면, 혹은 그로 인해 소외시킨다면, 그 사람은 자기부정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이 요조의 사례는 "우리가 누군가의 과오나 죄책감에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던진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실수는 결코 작지 않지만 그것만으로 곧바로 '실격'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대인들도 사실 요조처럼 각자 다양한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 회사나 학교에서는 프로페셔널한 모습, 친구들 앞에서는 유쾌한 모습, SNS에서는 더욱 꾸민 이미지를 보여주며 '진짜 본연의 나'를 감추거나 혹은 알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요조 또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그 방식이 어딘가 어설프고 과장되었다. 이마저도 남들에게 완전히 통하지는 않았으며 결국 누구도 진정한 요조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페르소나와 '역할 연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문제는 그 이중성이 깊어져 정말 자아를 잃어버리는 단계에 이르는 것일 텐데, 요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무너진 것이라 생각한다.


요조의 회피하고 도망치려는 태도, 끝내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 규정하며 스스로의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했다는 점을 비난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다만 그의 작품 내 모든 행동을 파편으로 쪼개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비난을 퍼붓기엔, 인간은 원래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무수히 많은 기대를 저버리고 추락해 놓고도 "여전히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삶을 지속하며 과오를 바로잡고 조금씩 개선하려는 용기를 내는 게 어쩌면 더 뻔뻔하지만 인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주변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반드시, 더더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 실격』을 보며 인상 깊던 구절을 공유하며 마치고자 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 익살 밑바닥에 있는 음산함을 간파당하여 하루아침에 경계당하게 되는 것도 싫었고, 또 어쩌면 이것이 내 정체인 줄 모르고 또 다른 취향의 익살로 간주되어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 하면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잘도 뻔뻔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세상에서 말하는 ‘방자한 놈’인 건지 아니면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약한 놈인 건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죄악 덩어리였던 듯, 끝도 없이 점점 더 불행해지기만 할 뿐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해당 구절들에서 더욱이 요조의 소외감을 절감할 수 있었기에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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