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다양한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완전한 평온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나는 본심을 숨기고 몸과 마음이 하는 말들을 무시하며 그저 나는 괜찮다고만 되뇌고는 했었다. 지금은 그저 나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되었고 덜 조급해지게 되었을 뿐이다.
몸과 마음이 건네는 이야기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며, 관찰과 기록을 통해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나서는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려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움이 덜어졌다. 괜찮지 않은 지금이 잘 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그 상태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더 이상 흔들리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흔들리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돌보려는 노력을 하는 만큼 돌아오는 길은 더욱 찾기 쉬워진다. 처음에는 무수히 많은 갈래길로 갈라질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오는 길을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한 길은 더 빨리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나는 더 쉽게 돌아올 수 있게 여기저기 이정표를 세워두는데 그 이정표들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나의 일상에서 작은 루틴들로 자리 잡게 된다. 그건 나의 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고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거창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저 나만의 작은 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아침마다 커피 향을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커피를 마시며 밤새 나의 안녕을 묻는다. 잠은 푹 잤는지, 어제의 피로는 회복이 되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막막해질 때면 밖으로 나와 크게 심호흡을 한다. 내 호흡이 얼마나 짧아져 있는지 혹은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머리가 너무 복잡할 때면 잠시만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아주 사소한 이 행위들은 나를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앉기 위한 자기 암시이기도 하다.
세상은 아주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고, 그 흐름에 맞춰서 따라가다 보면 쉽게 나 자신을 잊게 되고는 한다. 세상이 맞춘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다 보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 헷갈릴 때는 더욱 많아진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는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각자의 이정표를 세워두는 것도 꼭 필요하다.
그렇게 오늘을 나로서 살아가는 것.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음을 되새기는 것.
이건 그저 그게 전부인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