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체념(1)

by 유을

그날은 정말 아무 날도 아닌, 그저 너무 흔해 빠져서 기억에 남을 필요도 없었던 그런 날이었다. 핸드폰 속 배달 어플을 보면서 뭘 먹으면 좋을지 아주 즐거운 생각에 빠져있던 퇴근길. 갑자기 ‘툭' 무언가 내 어깨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고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은 저 멀리 튕겨져 나가 있었다. 순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파악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어깨의 얼얼한 감각에 대한 인지 보다는, 저기 떨어져 있는 핸드폰 케이스의 뒷면을 보면서 과연 앞모습은 온전히 제 형상으로 남아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간 건 어떤 젊은 남자였다. ‘저기요-’라는 부름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그냥 가만히 얼어붙어버렸다.


‘당장 그 남자를 불러 세워서 나에게 사과를 하게 만들어야 해’

라는 생각 한편에,

‘괜한 싸움 만들지 말고 그냥 참자.’

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했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눈에 보이지 않게 멀리 가버린 후에야 화가 몰려왔다.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나에 대한 감정이었다.

어렸을 적 부당하다 느꼈던 일들의 대부분의 것들은 폭력적인 상황에서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들은 자신들이 소리를 크게 내거나,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면, 다른 이들은 알아서 고개를 숙이거나 움츠러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어른들 말은 무조건 들어야 된다며 소리칠 때, 훈육의 명목으로 회초리를 들며 이것은 폭력이 아니라고 정당화할 때처럼 말이다.


그 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뼛속 깊숙이 상처가 자리 잡았으며 특히 여자였던 나는,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수치심 또한 느껴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을 거다-라는 보편화에 정당화하며 스스로의 괴로움을 외면해야만 했고, 어머니들은 부당함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맞는 아이들 옆에서 숨죽여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러한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 불편한 상황이 생겨도 무조건 참아야 된다는 가르침 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척 오빠가 잠깐 우리 집에서 지냈던 적이 있었었다. 지방에 집이 있었던 오빠는 재수학원을 다니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떠한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빠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의 배를 발로 찼다. 정확히 배인지 등인지 허리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부위 어딘가를 부여잡으면서 집 밖으로 뛰어 나갔던 기억은 선명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집 밖에서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네가 말을 잘못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었다. 맞은 건 나인데 왜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의 화풀이 대상으로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 또한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그 때문에 부당한 것들은 전부 나의 탓으로만 돌렸던 것 같다.


그 가르침이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습득된 것이다. 억울하다. 내 가치도 아닌 것이 나의 몸에 이미 배어 있다니. 자신 있게 내 의견과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것이 전부 부모님 탓인 것만 같았다. 엄마가 나의 손을 잡고 친척 오빠에게 가서 나를 때린 것에 대한 사과를 받아 내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고는 한다.


나 자신이 거부당했던 경험들이 쌓여, 나를 드러내기도 전에 포기하게 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를 싫어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고, 그 시간들이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그때는 부모님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를 탓하는 게 더 쉽게 느껴졌다. 가장 억울한 것은, 폭력과 억압 앞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했던 나 자신을 미워했던 시간들이다. 그 시간들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입이 없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