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체념(2)

by 유을

“걔는 벽에 붙은 껌딱지 같잖아 “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을 생각했다. 얼굴이 껌딱지처럼 일그러져 보인다는 건가, 아님 껌처럼 키가 작다는 걸까.

”아니, 가슴이! “

가슴이라는 단어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얼굴과 키도 아니고 가슴이라니. 그러다가 또 생각했다. 가슴은 안되지만 얼굴과 키에 대한 얘기였다면 그건 또 괜찮은 걸까.


오랜만에 산 원피스를 거울 앞에서 대보며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전에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며 잠깐 고민을 해보다가 원피스를 다시 내려놓았다. 겨우 집 앞 잠깐 나갔다 오는데 이런 원피스는 조금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인터넷으로 산 옷이었는데 도무지 입고 나갈 일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신경 써서 차려입은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나 나갔다가 누군가를 만났다가, 약속이 있냐 누구 만나러 가냐 꼬치꼬치 캐물음을 당한다면 아무 일도 없다고 민망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인스타에 올라와있는 화려한 옷차림과 화려한 화장의 여자들을 볼 때면, 나도 가끔은 누군가의 욕망이 되고 싶은 마음에 옷이나 신발 화장품 등 이것저것 사들이고는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그대로 창고 어딘가에 처박히고 만다. 그렇게 보이고 싶다는 것은 나를 봐줄 누군가에게 어필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위한 자기만족일까. 아니면 그런 욕망을 가지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그동안 예쁘다 못생겼다, 이런 외모에 관한 고민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예쁘지는 않지만 개성은 있다고 생각했고, 키가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았고, 마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뚱뚱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끼리는 서로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나눈다. 살이 쪘느니 빠졌느니, 눈이 작다 크다, 코가 높다 나다 하는 것들 말이다. 그건 그냥 가벼운 안부 같은 것이었다. 오늘 아침은 먹었냐 묻는 것처럼, 오늘은 좀 예쁘네? 하는 식의 인사말이다.


하지만 가슴이라면 좀 다를지도 모른다. 여자들끼리의 가슴에 관한 대화는 그저 가슴이 크면 아프고 불편하고, 좋은 점이라면 옷 입을 때 조금 더 태가 난다는 정도까지지만, 남자들에게서는 그저 외모에서만 끝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작은 내 가슴을 보면서 괜스레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전에, 여자로서 존재하고 여자라는 존재는 누군게에게 욕망의 대상이 된다.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는 동안, 나 자신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 버린다.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가끔은 나의 생각들이 정말 나의 생각인 것인지, 아니면 사회로부터 학습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여러 가지 심리학이나 철학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고는 하는데, 아참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지. ChatGPT를 켠다. 그리고 물어본다.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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