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없는 아이

by 유을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는 요즘, ‘잘 하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에 억울함 분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눈녹듯 녹아내렸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계속해서 한계예 부딪치게 되는 치열한 육아를 하고 있는 그녀는 요즘 삶에 대한 권태가 크게 다가왔다. 어디서 부터 시작된 감정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도 몰라 괴로웠던 날들이었다. 그저 그런 감정들을 속으로만 삭히고는 했는데 외면하려 할수록 표면위로 더욱 떠올랐다.


아기는 계속 자라고 있지만 그녀는 자라지 못한 채 머물러 있고, 아기는 반짝거리며 긍정적인 에너지로 빛이 나지만 그녀는 점점 더 어두운 마음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어딘지도 모를 어둠에서 허우적거리며 날카롭게 파고드는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를 그저 버텨내고 있었다. 제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조차 없는 탓이었다. 감정은 넘실거리며 흘러 넘치는데 닦아주는 이 없이 계속 계속 그렇게 흘러갔다. 그것을 주워 담지도 덜어버리지도 못하고 그녀는 그저 바라만 본다. 감정의 수도꼭지를 찾아 돌고 돌아서 또 다시 어린 시절의 상처의 기억으로 가서 머문다.


과거 속 기억의 단상 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그녀를 괴롭힌다. 왜 의식의 흐름은 지속되지 않으며 잊고 있던 흉터로 가서 당연하게 머물까. 그 흉터들을 모아 형상화 한들 그것이 온전한 나의 기억이라 할 수 있을까. 가끔은 되뇌이는 기억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때도 있다. 그녀와 닮은 누군가가 주인공인 짧은 영상을 계속해서 돌려보는 듯한 현실감 없이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생되고 또 다시 되감아지고 또 재생되고, 그 영상 속에는 어린 아이가 살고 있다. 그 어린 아이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 한 적이 없다. 그 아이는 입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탓에 아이는 필요가 없는 자신의 입을 스스로 꼬매버렸다. 그녀는 입이 없는 아이에게 말을 건다.


‘너는 왜 아직도 울고 있니?’


아이는 다시 말을 하고 싶어졌지만 입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입이 없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입이 없어도 괜찮아. 그대로도 완벽한걸.’


입이 없는 아이는 잠시 눈물을 그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입이 없는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입이 없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의 눈에는 그녀가 비쳤고 그녀의 눈에는 아이가 비쳤다. 눈동자에 비친 서로의 모습은 다르지만 또 닮아있었다.


그녀는 다시 터벅터벅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어둠 속에 자신이 살아야할 삶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상처를 보듬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또 한걸음 나아간다. 다음에는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지, 또 입이 없는 아이를 만나게 되면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생각하며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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