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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녜은 Jul 03. 2019

어딘가 어지러운 도시, 부산

미술계이방인의 전시여행법_ 부산편

나에게 부산은 어딘가 모르게 어지러운 도시이다. 동시에 불안정하다.  

이번 꽉 찬 스물다섯 생일여행에서

지금까지 느껴왔던 어지러운 부산의 겉모습 뒤에 숨겨져 있던 부산의 새로운 표정을 발견했다.



노마드의 도시, 부산


한국학의 거장, 고 김열규 교수가 말하는 부산

떠돌이 모래알들이 찰흙으로 변함으로써 영광된 떠돌이(노마드)의 도시를 이룩한 곳”이다. 떠돌이들이 ‘뜨거운 가마, 부釜산'으로 유입하게 된 최대 계기는 광복과 6.25전쟁이다.

1960년대 부민동의 판자촌 ⓒ사진출처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부산은 무슨 산山


부산지형적으로 산이 많은 도시이다.

부산의 산은 ‘’이고 두 가지로 해석된다.  

산이 많다고 하여 ‘부유할 부 '를 사용한 富山.

또는 산 모양이 가마꼴과 같다고 하여 ‘가마 부’를 사용한 釜山.  

부산은 넓게 펼쳐진 바다와 해안선, 산과 산 사이를 메운 건물과 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시다. ⓒAudi Magazine


첫 번째 표정

부산의 직선과 곡선


부산을 떠올리면 해운대 아니겠는가. 부산 바다와 인접한 도시이다. 바다는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감을 주면서 동시에 생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바다로 진출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자연이 내려준 '곡선'의 해안선이 사라졌다.

자연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은 곡선이다.
파도, 모래, 산, 구름 모두 곡선이다.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바라본 고층건물과 낮은 연립주택의 조화로움? ⓒ전예은
곡선을 잃어버린 해운대의 해안선. 산의 곡선과 대비된다.ⓒ전예은

항구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해안과 연한 토지들이 매립되었다.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바다는 육지로 변하였고, 그곳엔 고층 빌딩들이 들어섰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옛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하는 부산의 건축
해운대 지하철역부터 해운대 모래사장까지의 직선도로와 해운대의 장산의 곡선 ⓒ전예은
광안리 파도의 곡선과 광안대교의 직선.ⓒ전예은


두 번째 표정

해리단길과 맨션


서울엔 경리단길. 경주엔 황리단길. 부산에는 해리단길이 있다. 해리단길옛 동해남부선 해운대역 뒤로 나지막한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 보이는 해운대구 우동이다.

철길을 없앤 해운대역. 연남동 경의선숲길과 유사하게 공원을 형성하면 좋지 않을까. ⓒ전예은

철길을 가로질러 길을 따라가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높은 건물 숲이 사라지고 2-3층의 단층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리고 '맨션'이라는 단어가 적힌 단층 아파트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 숲과 대조되는 나지막한 건물들이 많은 해리단길 ⓒ전예은
맨션은 1970년대 초반 서울에서 중산층이 사는 저택이라는 의미로 등장했던 용어이다


단독주택의 형식이 아닌 아파트 모습을 지닌 맨션(아파트)는 부동산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고급스러운 아파트의 이미지로 상업적으로 선전되어졌다. 1970년 중반, 부산에 '맨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자연이 준 곡선도 아름답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곧은 직선의 건물들도 알흠답다. ⓒ전예은

맨션아파트의 개념은 일본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산은 지형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여러가지로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맨션에 대한 나의 집착은 해리단길에서도 계속되었다. ⓒ전예은


세 번째 표정

F1963


부산부산비엔날레, 아트 부산, 부산국제 화랑아트페어 등 미술계의 허브로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다. 2014년 가을답사로 다녀왔던 부산비엔날레. 비가 꽤나 내리는 흐린날이었고 폐장 시간전에 급하게 둘러보았던 그곳. 그곳은 옛 고려제강의 부산 수영공장이었고 지금은 F1963으로 재탄생하였다.

2014년 부산비엔날레 특별 전시장으로 사용된 것을 계기로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한 부산 수영공장
한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F1963


F1963은 요즘 부산의 핫플레이스이다. 조용히 입소문을 타면서 부산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본래 이 자리는 고려제강의 옛 수영공장이 있었던 곳이다.

1963년 고려제강은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F1963

45년간 와이어공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이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됨을 계기로 탈바꿈하였다.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켜 도시재생의 선구자로 뽑히는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과 유사한 사례로 손꼽힌다.

도서관, 서점,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F1963 ⓒ전예은
F1963은 무슨 뜻일까


"1963" 은 고려제강이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처음으로 공장을 지은 해를 의미한다. "F"는 Factory공장의 약어이다.  

와이어처럼 곧고 유연한 속성을 지닌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있다. 사색을 즐기며 산책이 가능한 공간이다. ⓒ전예은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재생 건축


F1963은 조병수 건축가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는 보존하기, 잘라내기, 덧붙이기 세 가지 방식으로 리노베이션하였다. 옛 건물의 형태와 골조를 유지한채 파란색의 메탈을 덧붙였다. 또한, 넓은 평면의 중간 부분을 잘라내어 중정을 만들었다.  

가운데 평면 부분을 잘라내어 중정을 만들었다. 중정에서는 여러 공연과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F1963
높은 수준의 전시가 무료
하종현 개인전  
@F1963 국제갤러리 부산 
2019.05.29-07.28

국제갤러리가 부산에도 있다. 서울 삼청동에 이어 부산점도 오픈하였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언제나 수준 높은 현존 작가들의 작품들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이다. 

하종현  <Conjunction 18-52> (2018) ⓒ전예은

하종현 작가한국 단색화의 거장 중 한 명이다. 그는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유화를 다루어왔다. 그는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배압법을 통해 독창적인 작업방식을 구축했다. 

하종현의 접합 Conjunction 연작 중 새롭게 선보이는 <Conjunction 18-52>(2018). 접합 시리즈에 '다홍색'이 추가되었다. ⓒ전예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F1963 소리길이 보인다. 하종현 작품과 소리길의 대나무 녹색이 잘 어울린다. ⓒ전예은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Chris Jordan : Intolerable Beauty)
@F1963 석촌홀
2019.05.25-07.14

아시아에서 열리는 크리스 조던 최대 규모의 개인전. 본 전시는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전에서는 뮤지션 루시드폴이 자발적으로 오디오가이드 제작에 참여했다. 

알바트로스의 숨결이 느껴지는 눈 그리고 깃털. ⓒ전예은

크리스 조던은 알바트로스 작가로 유명하다. 작가는 8년 여간 미드웨이 섬을 오가며 알바트로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전 과정을 살피며 영화 <알바트로스(Albatross)>제작하였다. 알바트로스를 향한 애도의 작업이다. 아름다움 너머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세번째 섹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비너스Venus 포스터. 수천, 수만개의 작은 이미지(비닐봉지 등)을 하나하나 조합하여 만들어낸 독특한 작품이다. ⓒ전예은

나의 원픽은 '견딜 수 없는 아름다운' 다섯 번째 섹션이었다. 하얀색 드럼통, 줄 세운 산업폐기물, 부산의 감천마을 전경 등. 아름답지만 이율배반적으로 견딜 수 없는 것들의 대립적인 조화로움.

전시장 곳곳에는 부산을 대표하는 야경과 스팟이 찍힌 사진들이 있었다. 부산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전예은



p.s. 꽉 채운 스물 다섯을 축하하고자 떠난 부산여행이었다. 부산은 나에게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하여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도시였다. 하지만 이번 뚜벅이 여행으로 부산의 올드앤뉴, 그리고 새로운 표정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여태까지 내가 그들의 삶을,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였다. 하드캐리한 1박 2일을 함께 해주신 엄마, 아빠, 예징 고마워. 암소갈비 맛있게 드셨쥬? 

생일 축하합니다. 광안리에서. ⓒ전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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