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부터 배우는 성장 방법
사수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오타를 낸 거 같아요...
네... 이미 발주된 스티커에...
거짓말이 아니었다. 발주된 스티커 전부 오타가 났다.
이미 인쇄된 6천 장의 스티커에 오타가 났고, 당장 상품 론칭이 얼마 남지 않아 폐기할 수도 없었다.
이것은 내가 대학생 신분을 벗어나 '직장인'이 된 지 단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과연 이 신입 디자이너는 어떻게 됐을까?
그 자리에서 바로 잘리고 스티커 6천 장 제작비를 월급으로 지불했을까?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면 눈치챘겠지만, (마감 기한이 정말 X1000 중요한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웬만해서 그렇게 큰일 나진 않는다. 회사 측에서 빠르게 스티커 6천 장을 소진시키고 제작 업체에 새 파일을 전송한 뒤, 마케팅 크리에이티브에서 오타가 최대한 안 보이도록 편집했다. 다행히 해당 스티커를 사용하는 제품이 주력 상품이 아니었기에, 회사 측에선 해프닝 정도로 넘어갔었다.
신입 땐 사소한 실수도 크게 느껴지는데, 6천 장이나 인쇄된 스티커에 오타를 냈다는 건, 일종의 커리어 사형선고로 느껴졌다. 이 신입 디자이너는 어떻게 됐을까? 디자인을 영영 접고 아예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비법은 바로 실수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효과적인 극복 방법 덕분이었다.
실수를 낸 다음엔 당연히 힘들었다. 신입 때 + 큰 실수란 점 때문에 더 의기소침해졌던 것 같다.
특히 '실수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학생 때부터 들었기 때문에, '사실은 나 실력 없는 디자이너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내 능력에 대한 의구심까지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계속 저렇게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애초에 이 글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끝없는 좌절의 시간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은, 하나의 문장이었다.
실수는 인생의 한 순간이다.
그 순간에서 나아갈 수 없다면, 그건 네 실력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집중하지 못한 채,
과거의 실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진짜 '실력 없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인간이라면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에 애플이란 굴지의 기업을 만든 기업가 스티브 잡스도 실수를 했다. 초 대기업 CEO의 실수와 그로 인한 여파는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신입 디자이너의 실수 규모와 궤를 달리한다. 저기서 언급되지 않은 사소한 실수들까지 합치면, 그 피해나 손실은 스티커 6천 장 인쇄비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것이다. 그렇지만 저렇게 많은 실수를 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수장이었고, 사후 여전히 칭송받는 기업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빠르게 개선하고 극복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가짐은 얼추 다잡았으니, 이제 실수를 극복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하면 됐다.
실수들을 바로잡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2) 주변에 이를 알리기
1번은 실수가 일어난 배경을 파악하는 것으로, 일종의 '실수 부검'을 하는 것이다.
내가 왜 실수를 했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꼼꼼히 파헤쳐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종 실수 개선 액션 아이템을 정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없는 것은, 환자를 검진도 하지 않고 수술대에 눕히고 보는 의사를 만난 것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환자 몸 상태를 토대로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파악하고 치료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건 모르겠고 일단 수술대에 눕히는 의사라면...
2번 '주변에 이를 알리기'는 두 가지 장점이 있는데, 포기할 수 없는 '셀프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 혼자 결심하는 것보다, 주위에 '나 다이어트 시작할 거야'라고 알리는 쪽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있다. 결심을 선언하게 되면,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포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대부분은 애초에 선언 자체를 까먹었을 것이고, 뭘 선언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실수를 고치겠다고 주위에 선언하게 되면, (실제론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타인의 날카로운 시선 덕분에 개선 과정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주위에 알리면,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쉬워진다.
이 내용을 읽은 사람들은 갑자기 당황할 수 있다. 앞에서 분명 주위 사람들은 뭐라고 말했는지 금방 까먹는다고 한 사람이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니 어이가 없을 수 있다.
이 경우는 '업무 상의 실수를 개선하는 과정'을 가정하고, 내 주위 동료나 사수에게 요청하는 느낌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나와 같은 업무를 하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 한 실수를 고치는 과정 중이다. 도움을 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라고 솔직하게 부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업무상 요청의 성격을 띤 부탁이다 보니, 잊기가 어려운 부탁이 된다.
누군가에게 내 실수를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반대로 내가 그를 믿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 당신을 신뢰하고 있고, 당신이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도움을 요청합니다'라는 느낌을 담아보자. 그 사람이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도움의 손길을 내줄 것이다.
'Don't cry over spilt milk'란 외국 속담이 있다.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울고만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인데, 그때의 내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란 생각을 했다. 빨리 우유 닦고, 왜 내가 우유를 흘렸는지 고민할 시간에 울고만 있으면 뭐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으니... 요즘은 오은영 선생님의 '다 울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가 이 속담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충분히 슬퍼했으니, 이제 행동하자...
주니어 시기엔 의욕은 넘치지만, 낯설고 뭐든 서툴다 보니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실수하고 이를 고쳤을 때 더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뼈아픈 경험은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니, 실수를 통해 얻은 지식들이 더 기억에 잘 남았다. 무엇보다 주니어 땐 실수가 '용납'된다. 경력도 적고 하니 '그럴 수 있지' 하는 눈빛으로 다들 바라봐 준다. 마치 아기들이 하는 실수는 괜히 귀여워 보이는 것처럼...
그러니 더 많이 넘어져 보고, 더 자주 성장하도록 하자. 부끄러움과 실수 없인 성장도 절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