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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30. 2019

결국 지상의 일

연극 <어나더 컨트리>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1930년대, 상류층 자제들만 모인 명문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생들 간의 정치적 움직임과 그것에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반항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는다. ‘가이 베넷’은 권위적인 기숙사 안에서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단추를 꼭 잠근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헝클어진 머리와 풀어진 복장으로 무대를 누빈다. ‘토미 저드’는 마르크스를 신봉하며 공산주의의 이상을 믿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그는 기숙사 안에서도 기숙사장, 프리펙트, 22라는 제한된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 공간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고지식하지만 고고한 인물로, 학생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다. 

  자유로운 영혼과 고지식한 이상주의자의 만남은 학교 밖에서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체벌로 아이들을 다스리는 고압적인 기숙학교라는 환경이 두 사람을 한 공간에 묶어 놓았고 친구로 만들었다. 또 가이와 토미 모두 한 쪽은 자유를, 한 쪽은 평등을 순수하게 믿는 청춘들이었기에 두 사람은 사상을 넘어선 우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우정은 학교 안의 권력으로 인해 위협받는다. ‘파울러’는 학교의 체제를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는 학생이다. 그는 학생들을 향한 체벌에 동의하며 규율을 어기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런 그를 경계한다. 무대 위의 학생들은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완장을 차고 있는 존재들이다. 기숙사장과 차기 기숙사장의 측근으로, 학생들이 투표로 뽑은 ‘22’로. 그들은 모두 그동안 그들이 받아왔던 체벌에 대해서 거부하고 반항하지만, 그들의 미래를 뒤흔드는 사건 앞에서 그들의 체벌에 대한 신념은 흔들리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암투가 벌어진다. 

  가이 베넷은 다른 학생들의 암투 속에서도 자유와 사랑만을 바란다. 그는 몇 년 후배인 제임스 하코트를 사랑하는 동성애자다. 기숙학교 내에서도 암암리에 벌어졌던 일이지만, 한 친구가 그 일로 자살을 하게 되면서부터 가이 베넷의 삶은 조금씩 위태로워진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나갈수록 계급으로 서열화 된 기숙사의 공간은 점점 그에게 위험한 곳이 되어간다. 학생들 중에서 제일 자유롭고 낭만적이었던 그는 친구들 사이의 암투 속에서 제일 큰 배신감을 맛본다. 

  흔히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어나더 컨트리>에서 또한 우리는 부유하고 고고한 그들에게서 계급 지어진 사회의 추악한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이 연극을 이끄는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라는 가장 순수했던 인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사회 속의 가장 약한 고리로 가해지는 압력을 목격한다. 가이 베넷이 소수자들이 겪는 시선과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었다면 토미 저드는 자본주의 정권 안에서 다른 이상을 꿈꾸는 사람을 자본적 사고와 행동이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결국 이야기는 ‘국가’에 대한 질문에 가 닿는다. 국가는 계급과 민주라는 허울 속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굴려가는 것이며, 그 안에서 순수한 소수의 사람들은 상처받고 내쳐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가이는 나라를 배신함으로써 나라를 바꾸기 위해 스파이가 되고, 토미는 나라를 떠나 타국의 전쟁에서 이상을 좇다 목숨을 잃는다. 가이와 토미는 모두 하늘을 향해 걸었지만, 결국 디딘 땅이 그들을 무너뜨렸다. 토미는 말한다. 이곳은 그냥 지상이라고. 토니의 말은 <어나더 컨트리>가 국가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을 담았다. 소수의 순수한 이상을 무시한 채 굴러가고 있는 국가는 어느 누구의 이상도 될 수 없다. 그저 그냥 인간이 득실거리는 하나의 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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