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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n 05. 2019

발을 담갔을 때에서야 비로소

<하나레이 베이>, 마츠나가 다이시, 2019.

  홀로 피아노 바를 운영하며 아들을 키우는 ‘사치’(요시다 요)에게 슬픈 소식이 날아든다. 하와이에서 서핑을 하던 아들이 상어에 물려 죽었다는 소식이다. 그녀는 곧바로 하와이로 향한다. 아들을 잃고 아들의 신변을 정리하기 위해 카우아이 섬, 하나레이 베이를 돌아다니는 그녀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굳건하다.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묶고서 잠시 묵는 호텔에서 손목시계를 풀어서 놓을 때에도 그녀는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줄을 맞춰 놓는다. 그리고 가장 심플하고 작은 유골함에 아들의 유골을 담아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한 여행객의 서핑보드 가방을 보고 아들을 삼킨 카우아이 섬에 일주일을 더 묵기로 한다. 

  그녀가 일주일 동안 했던 것이라고는 아들이 서핑을 하곤 했던 바다 쪽으로 의자를 놓은 뒤 책을 읽는 일이었다. 사치만의 애도의 방식은 매해 아들이 죽은 계절이 올 때마다 같은 곳에서 반복된다. 10년 동안 같은 시절, 같은 풍경으로 바다에 앉아 책을 읽던 그녀에게 아들 또래의 청년 둘이 눈에 띄면서 그녀의 가장 소극적이었던 애도의 방식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하와이에서 서핑을 하며 자유를 좇는 무모한 젊은이 중에 하나였을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모습의 ‘타카하시’(무라카미 니지로)는 하와이를 떠나기 전에 사치에게 ‘외다리 서퍼’ 이야기를 해준다. 자신들이 서핑을 하는 동안 사치가 앉아있던 그 자리에 서있고는 한다는 서퍼였다. 꼭 자신의 아들만 같은 그 서퍼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바닷가를 거닌다. 이렇게 그녀는 카우아이 섬을 걷기 시작한다. 아들의 환영을 찾으면서. 

  사치에게 카우아이 섬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을 안겨준 곳이다. 비록 그 섬에 사는 경찰이 ‘자연은 누구의 편도 아니에요’라는 위로를 건넨다 해도 그녀의 마음에 이 섬은 죽음 그 자체이다. 아들이 죽은 후, 너무나도 간결하고 말끔하게 아들의 신변을 처리하는 그녀는 비극의 섬을 미워하거나 슬픔에 인사불성이 되지는 않기로 한다. 그저 주어진 비극을 최대한 이해해보기로 한다. 그것이 그녀를 10년 동안 같은 자리로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아들의 환영을 볼 수 있다는 말 한 마디가 그녀를 흔든다. 그동안 계속 거부해왔지만,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녀가 가두어 둔 슬픔을 둑에 작은 구멍을 낸 것이다. 그제야 엄마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아이를 삼킨 자연을 헤매고, 자연에게 분을 풀어내기도 한다. 사치는 커다란 나무에 저항하듯 나무를 밀어보려 한다. 있는 힘껏 밀어보지만 아름드리나무는 잎사귀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시간과 함께 흐르는 자연에 상실에 무너진 작은 인간이 부딪히는 순간이다. 인간은 상실에 대한 답, 어쩌면 위안을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아무 말이 없다. 

  끝내 사치는 자신의 슬픔을 터뜨린다. 그동안 가져가지 않았던 아들의 손도장에 자신의 손을 맞대며 보고 싶다며 엉엉 우는 그녀. 마약을 하고 폭력을 일삼았던 미웠던 남편을 닮아가서 ‘아들이 미웠다’고 말했던 그녀지만, 아들의 빈자리에 남은 것은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치는 아들이 헤엄쳤던 바다에 발을 담그고 아들이 바라봤을 수평선을 바라본다. 사치가 아들을, 아들이 사랑했지만 아들을 삼켰던 자연을 비로소 이해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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