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Jun 09. 2019

우리는 별의 눈으로 별을 바라본다.

<슈퍼노바>, 칼라 카비나, 2016

  영화 <슈퍼노바>는 별에서 시작한다. 이야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이글거리는 별에서 시작해 은하와 성단을 건너 태양계를 지나 지구로 향한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명들의 소리를 담은 행성인 지구에는 우주 건너 이글거리는 별을 지켜보고 있는 ‘테레사’와 ‘다니엘라’가 있다. 테레사와 다니엘라는 그 별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엄청나게 밝은 빛을 내는 ‘슈퍼노바’가 있는 날, 결혼을 약속한다. 

  테레사는 자신의 가족을 결혼에 초대하기 위해 7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하지만 기쁘게 반기는 여동생 ‘안드레아’와는 다르게 아빠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테레사의 아빠는 청바지에 자켓을 걸친 테레사를 보고 안드레아에게 ‘제대로 된 옷’ 좀 빌려주라고 말한다. 아빠가 말하는 ‘제대로 된 옷’이란 안드레아가 즐겨 입는 화려한 색상의 드레스이다. 테레사의 아빠는 가부장적이다 못해 정해진 것을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빠는 자신만의 철칙으로 양계업을 운영하며 자신의 가족과 직원들을 먹여 살려 왔지만, 정작 가족들은 아빠의 통제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테레사는 그 중에서도 아빠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첫째 딸이다. 테레사는 가업을 이을 것이라고 가족의 기대를 한껏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테레사는 닭을 공장식으로 키우고 도축하는 양계업에 반대하고 채식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으며, 가족의 곁을 떠나 천체 물리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니엘이 아닌 ‘다니엘라’를 사랑하는 레즈비언으로 7년 만에 가족들 앞에 섰다. 테레사는 이런 다양한 간극들을 메우고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다니엘라’와의 결혼을 알려야 한다. 슈퍼노바가 있는 날 밤 전까지. 

  하지만 커밍아웃과 결혼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가족들에게 선포하기만을 기다리며 눈치를 보는 테레사 앞에 가족 농장의 위기가 찾아온다. 설상가상 가족들을 설득해내기 이전에 양계업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아빠, 남동생과 함께 동분서주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과의 7년이라는 간극은 조금 무마되는 것 같았지만, 화상통화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던 ‘다니엘라’와는 조금 소원해진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을 지상이 아닌 우주에서 이어준다.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랑의 호흡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이 공존하는 별의 시간과 같다. 우주와 연결된 두 사람의 사랑은 지상에서의 갈등과는 상관없이 견고하게 흐른다. 

  한편, 우리는 영화 속에서 아빠와 가족들의 마찰을 통해 가부장적이고 통제된 시스템 안에서 ‘성공’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과 대외적 성공이 아닌 개인의 ‘행복’을 찾는 가치관의 마찰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세대 간의 갈등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세대의 구분도 시간을 따라 직선적이지 않은 것이 이 영화의 독특한 시선 중 하나다. 테레사의 가족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필연적인 세대의 구분과는 별개로 각자의 행복을 꿈꾼다. 각자의 중력과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공존하는 우주의 행성들처럼. 영화는 테레사로 비롯된 통제 밖의 삶들이 아빠로 대표되는 통제된 시선들을 허물기도, 설득하기도 하며 두 가치관이 합쳐지는 과정을 유쾌한 가족 드라마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사회가 정의한 기준들로 개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관계라는 중력으로 묶인 개인과 개인이 직접 서로를 바라보는 것을 제시한다. 영화의 시작, 수사나 리베라의 “우리는 별의 눈으로 별을 바라본다.”는 말처럼. 


- 제 19회 한국 퀴어영화제


http://kqff.co.kr/newsletter/53882


매거진의 이전글 홍루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