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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n 10. 2019

우리라는 우리(cage)

<위 디 애니몰스>, 제레미아 자가, 2018

  매니, 조엘, 조나 형제는 야간 근무를 하는 부모님이 나가고 없을 때면, 서로에게 기대며 긴 하루를 보내곤 한다. 형제들은 똑같이 깎은 밤톨머리를 한 채로 셋이 함께 몰려다니며 먹고, 몸을 부풀리고 가슴을 두드리고 소리 지르며 유년을 통과해나가고 있다. 세 형제는 몸 안에서 폭발할 듯 밀고 올라오는 몸의 열기를 나누는 그들만의 의식을 한다. 잠들기 전, 이불을 덮고 손전등을 키고 ‘몸의 열기’를 주문처럼 웅성거리며 외는 일이다. 이렇게 매니, 조엘, 조나는 매일 밤 성장의 열기를 공유하며 서로가 하나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막내 조나는 매니, 조엘과는 조금 다르다. 막내로 태어난 조나는 두 형이 서로를 안고 한 침대에서 잠드는 것과는 다르게 혼자 간이침대에서 잠든다. 간이침대에서 조나는 형들이 잠들었을 때 침대 밑으로 들어가 일기를 쓴다. 이제 막 10살이 된 아이의 야만적인 상상과 환상적인 꿈이 섞인 조나의 일기는 조나가 자신의 ‘다름’을 인식하고 나서부터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성장에 불안과 혼란을 더 한다. 

  영화 <위 디 애니멀스>는 조나가 자신의 ‘다름’을 깨닫게 된 후부터 조나를 둘러싼 ‘우리’가는 ‘우리(cage)’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 디 애니멀스>는 조나의 그림일기를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으로 영화 중간에 끼워 넣으며 자신의 ‘다름’ 앞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조나의 감정을 대사가 아닌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조나가 주로 그리는 이미지는 자신이 물에 가라앉는 것이다. 이 그림은 그가 직접 겪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한다. 

  오랜만에 호숫가로 놀러간 가족. 아빠와 형 매니, 조엘은 물속에서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들며 물의 자유를 만끽하는 반면, 수영을 못하는 조나와 엄마는 물 밖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히스패닉계, 노동자 계층인 조나의 가족은 미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시선’을 피할 수 없는 가정이다. 그 안에서도 아빠가 아들의 머리를 똑같이 깎아주는 이성애 남성중심의 조나의 가족에서 여성인 엄마와 형들과는 ‘다른’ 조나는 물속에서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다. 영화는 가족 앞에 물을 두어 가족을 가른다. 엄마와 조나는 아빠의 성화에 이기지 못해 수영을 배우러 호수에 들어간다. 하지만 아빠의 수영강습은 엄마와 조나가 물에 빠지며 가족의 간극을 확인하는 트라우마로 끝나게 된다. 조나는 형들처럼 물에 뜨지 못한다. 이때부터 조나의 환상 속에서 조나는 언제나 물속에 있다. 수중에 갇힌 조나는 ‘다름’을 아직 인정하지도 다른 이에게 말하지도 못하는 어린 조나의 심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조나가 일기장에만 풀어 놓았던 자신의 ‘다름’에 대한 본능적인 끌림과 혼란들을 가족에게 들킨 순간부터 조나는 위태롭게 이어져왔던 ‘단일한 우리’에게서 차갑게 잘려져 나온다. 가족은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조나의 ‘다름’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달라진 시선을 조나는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조나는 찢어지고 흩어져 쓰레기통에 버려진 자신의 일기장을 집어 들고 집을 떠나 날아오른다. ‘우리라는 우리(cage)’에서 탈출한 조나가 지상에서 떠올라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습은 ‘단일한 우리’라는 말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개인의 모습이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라는 말이 담지 못하는 다양한 개인에 대해, 그 개인이 맞닥뜨리는 ‘다름’으로 인한 비극과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우리’를 탈출 했을 때의 해방을 담으며, 지금의 우리에게 단일함을 벗어던지고 다양함이 주는 자유에 몸을 맡겨 보라고 말한다.       


- 제 19회 한국 퀴어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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