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Aug 07. 2019

이름을 잊지 않는다는 것

<김복동>, 송원근, 2019

  밤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겨울의 이른 아침. 아흔을 넘은 ‘김복동’ 할머니는 손을 닦고, 세수를 한 뒤, 머리를 곱게 빗고 단단하게 매듭짓는다. 특별할 것 없는 아침의 풍경은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이 스미면서 무의미한 일상이 아닌 삶이라는 형태의 투쟁의 움직임이 된다. 그녀는 만 14세의 나이에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가 23살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녀가 아흔이 되는 시간까지도 그 때의 상처는 잊히지 않았다.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잃어버린 소녀의 시간에 진심어린 사죄를 받고 싶었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인정하지 않았고, 역사는 계속해서 역행해갔다. 

  영화는 ‘김복동’이라는 이름이 존재함으로써 투쟁해온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는 몸이 허락하는 한, 심지어는 몸이 허락하지 않을 때에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왔다. 매주 진행되는 수요집회에 나가 목소리를 더했고, 일본과 유럽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순회강연을 나가기도 했다. 현재에 살아 인류가 저지른 과거의 과오를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그녀는 살아 있는 역사이다.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에게 사죄를 외치면서 꿈꿨던 미래는 인간이 인간에게 행했던 지독한 폭력에 대한 인정, 그리고 그 인정으로 말미암아 반복되는 폭력의 고리를 끊는 것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소녀들의 꿈이 짓밟히지 않기를 매 순간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김복동 할머니와 위안부 피해자들은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며 많은 겨울들을 버티고 있다. 지난한 세월에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역사의 증인들은 지금도 일본의 지속적이고 면밀한 역사 다시 쓰기와 역사에 무지한 자들로부터 눈발 같은 차가운 비난을 버티며 평화를 바라보며 서있다. 김복동 할머니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었다. 그녀는 눈발이 쏟아지는 겨울 속에서도 두 눈을 감지 않고 얼음벽을 향해 부서져라 소리쳤다. 이제는 그 벽을 맞고 돌아온 그녀의 목소리를 우리가 이어 받을 차례다. 겨울 안에서 사라져간 그녀들을 잊지 않는 최소한의 움직임.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그 이름에서부터 평화가 피어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그릇에 응집된 열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