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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ug 04. 2019

한 그릇에 응집된 열정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 쥘 드 메스트르, 2019

  우리는 매일 ‘끼니’를 마주한다. 하루에 한 번 쯤은 끼니를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마주하는 식사들이 우리의 하루를 굴리는 중요한 연료가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 배를 채우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공간, 함께한 사람들, 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와 그것이 기억되는 방식까지 우리는 한 번의 ‘식사’에 온 감각을 동원해 만족을 찾는다.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은 한 입, 한 번의 맛으로 기억될 감각을 새기기 위해 세계를 누비는 ‘알랭 뒤카스’의 여정을 따라간다. 



  알랭 뒤카스의 여정 중에서 가장 주요한 프로젝트는 단연 영화 초반부에 비춰지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선보일 레스토랑 ‘오흐’일 것이다. ‘왕의 입’이라는 뜻의 레스토랑에서 그는 과거와 현대를 이으며 가장 호화로운 맛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알랭 뒤카스는 여행을 떠난다. 그의 유일한 호기심의 원천인 ‘맛’은 프랑스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미국, 홍콩, 필리핀, 몽골, 브라질을 누비면서 그는 세계의 온갖 곳에서 맛을 탐험하고 다닌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의 맛’이다. 알랭 뒤카스는 재료가 생산되는 산지에 가서 재료가 생산되는 방식의 올바름부터 산지에서 느껴지는 맛의 독특함을 탐색한다. 그가 말하는 산지의 맛이란 ‘완벽’과는 결이 다르다. 생산지에서 나오는 식재료만의 독특한 산미, 향 혹은 결함까지도 그에게는 소중한 맛의 경험이다. 그는 이 맛의 기억들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에게 새긴다. 

 알랭 뒤카스는 체험주의자이다. 그는 맛이나 레시피를 따로 기록해놓지 않는다. 대신 그는 동료들과 함께한다. 하나의 경험을 ‘함께’함으로써 경험의 폭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나눔’의 가치와도 맞닿는다. 그는 세계 곳곳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지휘하는 와중에도 필리핀에 요리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그곳의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이 요리를 통해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알랭 뒤카스는 요리라는 행위를 하면서 나눔과 공유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하고 있다. 그가 끊임없이 맛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는 일도 공유의 연장이다. 

그는 이 수많은 일들을 해나가면서도 베르사유 레스토랑 ‘오흐’의 레시피를 짜고, 웨이터들의 의상과 내부 인테리어를 결정했으며, 자신의 레스토랑의 귀빈 만찬의 서빙 속도까지 직접 체크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디테일이 모여 전부가 된다.” 라고. 알랭 뒤카스는 맛으로 시작된 모든 것을 섬세하게 조율해 나간다. 그렇기에 영화는 그를 탐험가이자 예술가,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지휘자라고 정의한다. 

  알랭 뒤카스는 프랑스 대통령의 가장 정치적인 식사에서부터 브라질에서 버려지는 식재료를 활용해 빈민층에게 제공하는 가장 도덕적인 식사까지 ‘음식’으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식사를 제공한다. 그에게 있어서 맛이란 단순히 먹을 때 느껴지는 찰나의 감각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영원히 남을 수 있는 행복한 ‘기억’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음식을 맛보는 손님들의 모든 감각에 맛있는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 매일 부단히 맛을 탐험하고 연구한다. 



  음식으로 새겨지는 행복한 기억,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깃들게 한다. 알랭 뒤카스는 우리가 가장 순수하게 느끼는 식욕이라는 욕구를 선한 자연의 품에서 자라난 재료들을 통해 ‘맛’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평화를 새겨 넣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여정 끝에는 베르사유의 레스토랑 ‘오흐’의 성공적인 개장은 단순히 요리계의 거장의 또 하나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식사가 낳는 또 하나의 행복한 경험이 열린 것이다. 또한 영화는 알랭 뒤카스의 길고도 집요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풍미가 넘치는 맛의 여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늘 당신이 삼켰던 맛은 어떠했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 한 입에 응집된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렇게 요리는 무수한 시간과 정성이 녹아든 하나의 우주가 된다. 그리고 ‘알랭 뒤카스’라는 이름을 한 열정의 자취를 목격한 우리는, 우리가 실은 매일 우주를 맛보며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7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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