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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l 10. 2019

괜찮은 배팅

<롱 샷>(2019)


  미국 국무장관 ‘샬롯 필드’(샤를리즈 테론)은 미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다. 무능한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그녀는 화장실에 쏟아진 물을 닦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릴 만큼 피로하지만 쉴 수가 없다. 쏟아지는 일정도 일정이지만, 그 사이사이마다 그녀는 ‘이미지’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영화 속에서 여성 정치인을 향한 관심은 가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녀의 스타일, 언행, 스캔들까지 정치적 가치관 외의 모든 것이 소비된다. 그런 세상에서 샬롯은 타협하고 살아남기를 선택한다. 그녀는 차기 대선을 준비하고 있었고, 보좌하고 있던 대통령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재선을 포기하고 그녀를 지지해주기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그녀를 향한 국민들의 지지율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 샬롯에게 더 이상 타협하지 않아도 될 고지가 멀지 않았다. 

   반면, ‘프레드’(세스 로건)는 최악의 하루를 보낸다. 주류 언론에 대항하던 기사를 써왔던 영세한 신문사에서 일하는 그는, 이제 막 그 곳에서 퇴사했다. 일하던 신문사가 ‘웸블리’라는 질 나쁜 기사를 써서 언론을 장악하던 언론 재벌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사를 쓰면서 웸블리를 공격하던 기사를 써댔던 프레드에게 웸블리를 위해 기사를 쓰는 일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는 제 발로 회사를 나와 백수가 되었다. 프레드의 친구는 그런 그를 위로하기 위해 가수 ‘보이즈 투 맨’이 나온다는 세계 자연 기금 파티에 데려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첫 사랑이었던 샬롯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위치는 첫 만남부터 위와 아래로 갈라져 있다. 하지만 샬롯을 만나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프레드의 눈 가득 반짝이는 조명이 비치는 것으로 샬롯을 향한 프레드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부터 영화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빠르게 두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그 사이에 유머를 섞어 성별이 바뀐 신데렐라 로맨스를 척척 진행해 나간다. 

  이 사랑이 갈등을 빚는 과정도 이전의 신데렐라 로맨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프레드가 샬롯의 꽃길에 걸림돌이 되고 만 것이다. 다만 샬롯의 위치가 왕자님들과는 전혀 다른 위치라는 점이 이색적이다. ‘그’가 아니라 ‘그녀’이기에 타협했던 많은 순간들을 프레드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다기 보다는 그녀가 쉽게 자신의 이상들을 포기하는 이유를 실감하지 못했다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두 사람의 지위가 땅과 하늘만큼 나더라도 샬롯은 여성이기에 수많은 일들에서 타협해왔다. 그녀는 정치활동과는 별개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무례함을 웃어넘기고, 피곤함을 감추려 애쓰고, 꼬치를 먹는 모습이 흉해 보일까 숨어서 먹기까지 한다. 그녀는 아주 작은 부분들에서부터 자신을 포기하는 법을 익힌 사람이다. 프레드는 금방 그녀가 제시한 ‘신상 세탁’에 동의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샬럿은 ‘온전한 그’와 ‘온전한 자신’의 사랑을 위해 도박을 걸어보기로 한다. 물론 그 끝은 해피 엔딩이다. 

  영화는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결말을 맞는다.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 전형적이었다면, 이전에는 영부인들이 소개하던 백악관을 영부군이 소개한다는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전형적이지 않은 새로운 모습이다. 이밖에도 영화는 공화당과 민주당, 인종갈등, 종교에 대한 편견 등을 마지막 해피엔딩에 마구 섞어 낸다. 조금 급작스럽기는 하지만, <롱샷>은 제목의 의미처럼 이 해피엔딩에 사회에게 바라는 희망사항을 잔뜩 넣어 도박을 건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 괜찮은 배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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