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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Oct 04. 2019

손끝에서 속삭이는 희망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현진식, 2019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 ‘김지희’씨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고, 말 수가 적으며 감정 표현의 강도가 약하다. 세상을 향해 속삭이듯 표현하는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영화의 시간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대 위의 지희씨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눈다. 기타를 통해서 누구보다도 맑고 명료하게 사람들을 향해 노래한다. 영화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는 희망을 전하는 기타리스트, 김지희씨가 ‘장애에도 불구하고’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 아닌 한 명의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지희씨의 바쁜 일상을 담으며 시작한다. 지희씨는 병원, 지하철 역, 지하상가, 정치 포럼에서까지 연주를 한다. ‘지적 장애인 기타리스트 김지희’라는 소개를 받으면서. 사람들은 그녀를 ‘장애’의 틀 안에서의 예술가로 바라본다. 그녀가 전하는 희망과 노래가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처음에는 지희씨의 가족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대화와 표현이 적은 지희씨와 다른 방식으로라도 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타를 건넸었다. 하지만, 기타는 지희씨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지희씨에게 기타 연주란 ‘한 번 올라서면 끝내고 내려오고 싶은 것’이며,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게 사랑하는 대화의 창구이자 열정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지희씨는 말하지는 않지만, 완고한 행동으로 그리고 기타를 향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기타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다. 



  결정적으로 기타는 지희씨가 유일하게 욕심을 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를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해진 악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보에 자신을 실어 보내야 한다. 지희씨를 처음 마주하는 관객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 챌 만큼 섬세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지희씨에게는 자신의 소리를 알고, 그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지희씨는 조금 더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고, 경험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수인 것이 그녀의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이다. 완전한 독립은 힘들지라도, ‘혼자서 경험하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든 지희씨와 함께했던 지희씨의 어머니 ‘이순도’씨는 조금씩 지희씨의 독립을 위한 연습을 시도한다. 지희씨를 혼자 서울로 연습을 보냈던 날. 그 날은 이순도씨에게는 몸이 힘들어도 함께 했던 시간들보다 더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떨어지기는 일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가족은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지희씨가 ‘창작’을 꿈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창작을 위한 경험을 위해 지희씨는 많은 사람들과 풍경들을 마주한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짝을 지어 놀이공원을 가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도 하며, 바닷가에 가서 크게 소리 질러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쌓아낸 끝내 지도 선생님과 함께 하나의 곡을 완성해낸다. 곡의 제목은 ‘엄마의 뒷모습’이다. 지희씨가 어려서부터 보고 느꼈던 크고 따뜻한 뒷모습. 그 뒷모습을 기타소리로 그리듯 펼쳐낸 곡이 영화의 마지막, 지희씨의 손가락에서부터 가만가만 흘러나온다. 그 소리는 영화의 시작에 보여주었던 스크라빈스키의 말처럼 ‘작지만 멀리 들리고, 마음 속 깊이 스며든다.’

  손끝으로 희망을 속삭이는 지희씨의 이야기를 함께 따라 걷다보면 지희씨의 꾸밈없는 표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의 작은 흔들림, 활짝 펼쳐지는 웃음을 통해 지희씨가 지희씨의 방식대로 풍부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우리와 지희씨 사이의 장애물은 한 시간 반 남짓한 상영시간 동안 거품이 사라지 듯 녹아 없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지희씨가 말하는 희망이 그녀의 기타 소리를 따라 맑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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