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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29. 2019

구멍 난 가슴에 의심이 흘러넘쳐

<메기>, 이옥섭, 2019


  한 연인의 농도 짙은 애정행각을 가감 없이 담아낸 한 장의 엑스레이 사진은 무료하게 흐르던 마리아 성모병원 사람들의 일상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 사이에는 의심이 피어나고, 사람들은 찍은 사람을 궁금해 하기 이전에 ‘찍힌 사람들’을 추리하느라 술렁인다. 그리고 마리아 성모병원의 간호사 ‘윤영’(이주영)과 그녀의 남자친구 ‘성원’(구교환)은 그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들일 거라고 믿는다. 

  사직까지 생각했던 윤영은 고민 끝에 병원에 계속 출근하기로 결정한다. 엑스레이 사건이 터진 후 이틀 째, 그녀는 황당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병원에 부원장 ‘이경진’(문소리)과 자신만 출근하고 모두 병가를 낸 것이다. 과연 병원 사람들은 그들의 말처럼 모두 한 날 한 시에 아팠던 것일까?, 아니면 모두 엑스레이 실에서의 애정행각에 연루되어 있는 것일까?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의심을 멈출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직접 확인 하는 일. 윤영과 경진은 ‘믿음을 검으로, 의심을 방패삼아’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병원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영화 <메기>는 병원에서 벌어진 발칙한 사건을 통해서 ‘의심’에 대한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사람들 사이에 흥건하게 퍼져 있는 가볍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중대하기도 한 의심의 기류 속에서 영화의 나레이터 ‘메기’가 뻐끔뻐끔 숨 쉬고 있다. 메기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의심의 기류를 민감하게 느낀다. 그리고 재난이 찾아올 때면, 힘껏 물 밖으로 튀어 올라 재난을 알린다. 하지만 그것을 믿을지 말지는 다시 ‘의심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의심이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과연 의심이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성질의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따지고 보면 의심은 그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의심 자체는 'O'와 'X'로 간결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의 역할은 단지 사람이 사실에게 다가갈 추진력을 주는 것뿐이다. 사실이 밝혀지면 ‘의심’ 자체는 홀연하게 사라진다. 그렇다면 의심을 욕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믿음’과 ‘사실’이다. 둘은 의외로 명료하지 못하다. 

  메기는 말한다. ‘사실은 온전하게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사람에 의해 편집된다.’ 라고. 사실을 이렇게 편집한 사람들이 믿는 것은 다시 그들의 ‘믿음’이다. 이렇게 의심의 구덩이를 들여다보면, ‘사실-의심-믿음’이 꼬리를 물고 엉켜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 특히 청년들은 이 의심의 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실을 제멋대로 편집해서 믿고, 의심하고, 의심을 통해 나온 사실을 또다시 편집하고 믿는 과정을 반복하며 순간순간 고민하고 번뇌한다. 반면, 이경진 부원장은 ‘믿음’ 앞에서 초연하다. 의심의 굴레를 미리 겪어본 바, “내가 개를 고양이라고 우겨도 믿을 사람은 믿고 떠들 사람은 떠든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여윤영 간호사는 그래도 무언가를 ‘믿어 보려고’ 한다. 어쩌면 영화가 청년의 모습은 의심의 구멍이 싱크홀처럼 뻥뻥 뚫려있는 사회 속에서도 무언가를 ‘믿어 보려 노력하는 사람’ 일 것이다. 

  현실이 상상을 뛰어넘는 세상 속에서 의심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다만 영화는 의심을 마주할 당신에게 두 가지 방식으로 조언한다. 하나는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메기를 믿어 보거나, 또 다른 하나는 의심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메기의 움직임을 믿는 일이란, ‘육감’에 운명을 맡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의심은 메기와 같은 전능한 제 3자의 힘에 의해 어떤 쪽으로 답이 나오든 “역시”라는 꼬리표를 달고 매듭지어진다. 메기를 믿으면서 ‘역시’ 하고 조소하며 의심을 넘기는 일은 쉽고도 간단하다. 이것이 메기가 세상을 구하는 방식이다. 

  다른 방법은 ‘의심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이다. 이경진 부원장은 ‘의도에 맞지 않아도 있으면 좋은 말’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덩이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구덩이의 깊이를 알고 그것을 빠져나오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관계와 사회 사이에 뚫려 있는 의심의 구멍들을 구멍에서 빠져나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영화 초반 윤영이 종이쪽지를 던져 넣고 지나친 작은 구멍이 자신 앞에 거대한 싱크홀이 되어 나타난 것처럼 우리 코앞에서 믿었던 것들이 갑자기 송두리째 의심의 구덩이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의심이 똬리를 틀고 자신의 믿음에 구멍을 내고 있는 걸 발견한다면, 구멍 속에서 같이 믿음과 사실을 훼손하며 구멍을 파내려가거나 서둘러 구멍을 메워버릴 것이 아니라 의심의 원인을 되짚어보고, 곱씹어본 다음 판단과 경험으로 그 구멍을 채우고 꼭꼭 눌러 메우도록 하자. 그렇다면 그 다음 디디는 발걸음들은 전보다 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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