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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26. 2019

줄탁동시

<미드90>, 조나 힐, 2019

“내 방에 들어가면 죽는다.”     


  형 ‘이안’(루카스 헤지스)이 엄포를 놓고 집을 떠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형한테 가차 없는 폭력을 당했던 ‘스티비’(서니 설직)지만, 애초에 세상에는 형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동생이란 없다. 스티비는 형이 집을 나서자마자 형의 방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스티비의 유년은 끝난다. 스티비는 말끔하게 정리된 형의 방에 전시되듯 놓인 모자, 조던 신발, 덤벨, 형의 CD들을 보면서 이제 자신이 몸을 담글 90년대라는 시대에 눈을 뜬다. 

  스티비의 눈에는 더 이상 길거리에서 벌이는 아이들의 물총놀이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 어린 아이들의 장난 같은 것 말고, 정말 쿨한 것. 90년대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찾고 그 일에 뛰어들고 싶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스케이트보드’이다. 스티비는 이안에게서 80년대의 유물 같은 스케이트보드를 자신의 음악들과 바꾼다. 영혼의 일부를 내어주고서 받은 스케이트보드. 스티비는 이제 가만히 귀로만 듣고 상상하며 흥얼거리던 자유에서 벗어나 몸으로 부딪히고, 발을 굴러 앞으로 달려 나가는 자유를 장착했다. 스케이트보드 가게를 기웃거리던 스티비의 세계는 자연스럽게 ‘레이’(나-켈 스키스)를 중심으로 한 보더들의 세계로 편입된다. 



  영화 <미드 90>는 4:3 비율을 통해서 스티비와 보더들의 90년대를 시각적으로 재현해낸다. 어딘가 뭉개진 듯한 색감과 지직거리는 화면의 스크래치들을 통해서 VHS TAPE의 느낌도 그대로 복원해냈다. 그래서 스크린을 통해서 펼쳐지는 스티비의 성장기는 마치 영화 속에서 내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보더들의 일상을 찍는 ‘4학년’의 눈을 통해 보는 것 마냥 생생하다. 의도를 담고 찍어낸 것을 최대한 숨기고 90년대의 청춘들의 성장의 일부를 들어내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서 영화는 그들의 끝을 모르고 터져나가는 자유와 비행 그리고 그것에 취해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을 현장감 있게 그려낸다. 

  ‘레이’ 패거리는 그들이 누리는 자유가 주는 해방감에 취한 나머지 너무도 쉽고 순수하게 비행에 빠져든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무단침입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을 저지하는 타인들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몸을 부풀려 거대한 위협으로 맞선다. 그들이 누리는 자유의 표면은 허세와 치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스티비는 레이와 가까워지면서 그들이 자유에 도취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듣게 된다. 

  누구는 엄마가 알콜 중독이며, 가정은 폭력의 장이었고, 가난에 허덕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삶의 초점을 놓쳐버린 친구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자유에 취한 것이었다. 실은 스티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사귀는 남자가 바뀌고, 몸만 큰 형은 애처럼 오렌지 주스를 입에 달고 살면서 자신을 폭행한다. 그런 집안은 계속해서 나아질 것 같지 않고 앞으로 몸과 머리가 크면서 눈에 들어올 세상은 답답하고 무겁게 자신을 짓누를 것만 같았다. 그래서 스티비도 세상의 압력을 피해 거리로 나왔다. 

  술에 취한 채로 운전을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그들의 자유가 크게 한 방 맞은 그 때, 스티비는 팔을 크게 다친다. 비행까지 뻗어나갔던 보더들의 자유에 일침을 가하는 운명적인 사건이다. 그 이후로 병실에서 정신이 든 스티비는 형이 건네는 오렌지 주스를 함께 마신다. 그렇게 스티비는 자신이 얕봤던 형의 ‘자라지 못한’ 부분을 이해한다. 자신보다 먼저 태어나 세상의 혼란을 마주했던 어린 형의 과거, 그로부터 더 이상 자라지 못했던 한 부분을 ‘외톨이’라며 조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주스를 마시며 이해하기로 한다. 스티비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온 몸을 다해 세상이라는 벽을 향해 부딪쳤다. 그런 스티비를 유심히 바라본 레이는 그렇게 세게 부딪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이라는 알을 깨기 위해서 자신들 혼자의 힘으로 막연히 몸을 세게 던져 부딪치지는 않기로 한다. ‘4학년’이 준비한 ‘미드 90’라는 이름의 그들이 출연하고 그들의 자유로운 일상을 담은 비디오를 함께 보며, 그들의 성장통을 함께 관람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들의 성장을 바라본 이들은 더 이상 혼자서 세상의 벽을 두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스티비의 엄마가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말을 건넸던 것처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아무리 늪 같이 느껴져도 뻗어주는 손이, 밀어주는 말이 있다는 것을 믿고 함께 알을 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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