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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16. 2019

소비의 무덤에서 행복 찾기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 2019.

  ‘폴’(플로리안 데이비드 피츠)과 ‘토니’(마치아스 슈와바이어퍼)는 IT회사를 공동 운영하고 있는 단짝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두 사람은 단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극과 극의 사람들이다. 영화는 서로 다른 폴과 토니의 성격을 아침을 맞는 두 사람의 자세로 간결하게 보여준다. 토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용모를 가다듬은 다음 미래를 위한 탈모약을 한 알 먹으며 부지런하고 흐트러짐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반면, 폴은 핸드폰을 보며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그 자리에서 뉴스를 보았다가 쇼핑을 하다 포르노로 흘러간다. 이렇듯 토니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단정한 목표의식이 분명한 사람이라면 폴은 되는 대로 흘러가는 다소 감성적인 사람이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들이 개발한 앱 ‘나나’를 선보이고 투자를 받기 위한 길에 나선다. 폴이 늑장을 부린 덕에 정신없이 흘러가는 그들의 아침. 발표를 앞두고 바싹 신경을 세운 토니에게 폴은 물렁한 질문을 던진다. “너 지금 행복하냐?”

  실없이 던진 폴의 질문 덕분이었을까, 두 사람은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 여정에 오르게 된다. 앱 ‘나나’를 400만 유로에 판매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폴을 이용한 토니에게 폴이 시비를 걸면서 회사 지분의 절반을 직원들에게 내어주는 조건으로 전 직원 앞에서 내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내기는 ‘100일 동안 100가지 물건으로 생존하기’다. 매일 자정 하나씩 물건을 추가할 수 있고, 그렇게 물건을 하나씩 더해 100일을 버틴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 그렇게 폴과 토니는 팬티 한 장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100일의 도전에 던져진다.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 물건으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는 이제는 우리의 삶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서 단어마저 진부해진 ‘소비주의’를 유쾌하게 비튼다. 폴이 만든 앱 ‘나나’는 영화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이의 핸드폰에 성격을 부여해 감정적으로 교류하게 만든 이 어플을 향해 “사랑해”라며 말을 건네는 폴을 보면 영락없이 <그녀>의 테오도르가 떠오른다. 하지만 토니는 ‘나나’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활용한다. 사람들의 데이터를 축적하여 물건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거기에 마크 주커버그를 닮은 세계적 기업의 CEO가 등장하며 ‘나나’에 사용된 패러디는 ‘소비’에 초점을 맞춰 SF적인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과 한층 더 가까워진다.

  내기를 시작한 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토니는 생존에 필요한 침낭, 옷, 침대를 더해가는 반면, 폴은 코트, 핸드폰, 인터넷 등 감정적이고 정서적으로 물건에 자신을 의탁한다. 하지만, 그가 의탁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나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관계를 착각하게 만들어 소비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달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 SNS를 통해 사람, 정보와 연결된 감각을 얻고 수없는 소비를 해 온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다.

  이렇게 소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형식을 극단적으로 담은 인물이 ‘루시’(미리엄 스테인)이다. 토니와 사랑에 빠지는 그녀는 사랑하는 토니에게 조차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곧 루시는 소비주의 사회 속에서 가장 큰 공허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던 것이 드러난다. 폴과 토니는 자신들의 회사를 키워 1400만 유로에 회사를 인수시키는 것에 성공했지만, 루시를 비롯한 자신들의 공허를 채우지는 못한다.



  주인공들의 공허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사람은 물건뿐만 아니라 자유도 미래도 없었던 시대에서 살아남은 폴의 할머니다. 폴의 할머니는 “행복이란 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붙잡으려면 주먹을 꽉 쥐어야 한다고 말한다. 폴은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행복을 붙잡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실은 그런 폴에게 경쟁심과 질투를 느꼈던 토니가 더 자신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던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삶을 재단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토니는 성공에 다가갈수록 행복과 관계들이 멀어지는 광경을 보며 혼란스러워 한다. 영화는 행복을 잡았다가도 놓치는 두 사람을 통해 과연 공허만 가득한 현대인의 삶에 행복은 존재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결국 폴과 토니는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소비, 물건, 사람, 사랑, 관계, 우정들이 모두 무너지고 나서야 행복에 대한 답을 찾는다. 100일 동안 100가지의 물건으로 폴과 토니가 찾은 행복에 대한 답은 ‘행복은 물과 같기에 잡는 것이 아니라 빈 곳에 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돈, 소비, 물건, 시스템, 관계도 모두 내려놓고 그 빈자리에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둔다. 그 사이로 행복이 스밀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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