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사무소에 끌려들어간 20대 여성

계약금 300만원을 송금하는 순간, 당신은 을입니다.

by 지지

혹시 당신이 분양 사무소를 들어갔는데 긴 글은 못 읽을 상황이라면 그냥 말하겠다.


돈 없고 미래가 불투명하면 감언이설에 넘어가 계약금을 송금하지 마라.

절대 하지 마라.

무조건 투자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돌려준다고? 빌려준다고? 그거 그냥 계약서 쓰려고 그냥 하는 말이니하지 마라.

실제 계약 후 철회의사를 밝히자 직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몸 건강하면 그냥 일어서서 나와라.


요즘 부천 상동역 근처를 돌아다니다보면, 특히 4번 출구 근처 상가에 있다 보면 휴지나 행주 따위가 든 봉투를 들고 돌아다니는 아줌마들을 마주칠 수 있다. 아줌마들은 지나가는 자전거에도 다짜고짜 봉투를 들이미는가 하면, 막 커피숍에서 나오는 사람, 다이소에서 나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가가서 한 번 들렸다 가라며 뭔가 많이 들어보이는 봉투를 냅다 내민다. 그걸 뭣 모르고 받는 순간, 그리고 돌려주지 못하고 아줌마가 팔짱을 끼고 등짝을 떠밀어 분양 사무소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 꽤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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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자전거에게 갑자기 봉투를 내밀거나, 팔짱을 끼고 등짝을 밀며 20대 여성을 데리고 가는 아줌마들의 호객 행위

나는 분양 사무소에 대해 잘 몰랐다. 이 나이 이 때까지 부동산 관련되어서 알아봤던 것들은 끽해봐야 보증금 500만원으로 머물 수 있는 작고 협소한 원룸이었고, 쓴 계약서도 임대차 계약서가 전부다. 장애인이라 조금만 걸어도 피곤해지는 몸으로 다이소에서 한바탕 쇼핑을 끝내고 발바닥이 저릿해져 감각이 없어질 때쯤 문을 나왔고, 그대로 아줌마에게 잡혔다. 아줌마는 내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날 사무소로 데려가야 하는 할당 인원이 정해져 있는데 그게 다섯 명이라고 했다. 덕분에 집에 간다며 내게 연신 고맙다는 아줌마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분양사무소는 건물 2층에 있었다.

들어가자 담당자 한 명이 내게 배정되고 친절한 직원이 내게 차를 마실지 커피를 마실지 묻는다. 나는 오래 머물지 않을 생각으로 거절한다. 들어온 김에 부동산을 배운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마음이 없으면 그냥 돌아가야 했다.


P시에 위치한 생활용주거시설 용도 건물, 그러니까 오피스텔 'A 트라움 2차'의 이점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해준다.


콜센터와 행정복지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나는, 습관적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쓸데없이 호응을 잘하고 추임새를 넣어준다. 그런 나의 모습이 열성적으로 비추어졌는지, 내가 돈이 없고, 상황이 이렇다고 거절하자 팀장은 본부장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계약금을 전부 입금하는 날짜를 미뤄달라며 방법을 찾아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날짜를 아무리 미뤄줘도 나는 거절했다. 8월 말까지로 딜이 들어가고, 계약금이 300에서 200이 되는 마법까지 본부장님이 부리고, 없으면 빌려주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계약금 200은 다시 팀장이 300으로 원상복구를 시켰다. 순식간에 오고 가는 말들. 그 속에 내 의사는 없었다.


아니에요. 제가 돈이 없어서요.

제 상황이 이래요. 가진 돈이 그게 전부에요.

좋은 건 알겠는데, 괜찮습니다.


내 화법이 거지 같은 게 문제였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는 건데, 나는 한 마리의 호구 그 자체로 말하고 있었던 거다. 그 사람들은 자꾸 물릴 것 같은 여지를 보여준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최선을 다해서 거절하고 있었다.

파티션으로 가로막혀 있고, 건물은 2층. 나는 솔직히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20대 후반의 나처럼 나이가 적은 여성에게 두 사람이나?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일어날 때도 나는 꾸물거리며 일어날 거고, 나갈 때도 느리게 걸을 거다. 왜냐. 그냥 일어나다가도 넘어지고 그냥 걷다가도 헛발질로 넘어지는데 빠른 걸음? 달리기로 도망가기? 다 어불성설이다. 만약 잘 튀었어도 엘레베이터 누르고 기다리느라 잡혀서 얘기를 들었을 것 같다. 아니면 느릿느릿 계단 내려가는 우스운 꼴을 보여줬겠지. 하지만 지금은 후회한다. 어쨌든 일어설걸, 집에 간다고 할 걸. 나는 예의바른 사람이고 싶었고, 착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냥 이게 문제였던 거다.


하필 또 핸드폰은 잠깐 충전을 맡겨놨다. 사실, 나는 전화를 할 수 있는 상대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랑 상의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잘 모르는 문제라서 부모님과 상의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도 한다. 요즘은 다 그런다. 돈 그거 있어봐야 까먹기만 한다. 쓰고 나면 아껴서 생활하려고 허리띠 졸라매고 더 성실해진다. 어른인데 뭘 상의를 하냐.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아, 도무지 통하지 않는다. 계약서를 쓰게 하고자 하는 영업하는 이들은, 상식적인 선의 거절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냥 돈을 주고서라도 그 자리를 나오고 싶었다.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입금하려면 필요하다고.


돈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았다.

적금 얘기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부족해서 대출을 했다. 앞에서는 송금을 재촉하며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나를 담당했던 사람이 저것 봐, 저것 봐. 지금 직원한테 본부장님 얘기하는데 반대하잖아. 얼른 넣어. 빨리 빨리, 하고 재촉했다. 나는 정말 피곤했고, 하기 싫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심드렁하고 힘빠진 대꾸를 하고는 결국 돈을... 한 계좌로 다 끌어모았다.


그리고 송금하려는 순간.


역시 싫다.

하기 싫다.

이걸 넣고 나서 내 앞에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이 사람들 얘기로는 내가 공시를 치고 있고, 면접을 앞둔 상태이니 면접은 거의 안 떨어지고, 공무원은 합발이 나면 그때부터 바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대출 받아 계약금을 내라는데... 아니 왜? 내가 가본 적도 없는 평택 땅, 그것도 내가 아주 치를 떠는 미친 듯이 작은 원룸을? 남한테 살라고 투기 목적으로 계약해야 하지? 돈 모아서 우리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엄마 모시고 어디 가기에도 바쁜데? 그래서 싫다고 했다.


역시 아닌 것 같아요.

좋은 기회인 건 알겠지만 시기가 너무 안 좋네요.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으면 하겠습니다.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낚시꾼의 마음은 얼마나 애가 타겠는가. 그렇게 또!

또!

1시간을.


결국 입금했다.

내가 입금한 이유는, 대표가 300만원을 돌려주겠다고 말한 것 때문이다.


입금하기가 너무 싫어서

계속 번호 찍고도 싫어서, 진짜 완전 너무 싫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대표가 나왔다.

왜 이렇게 입금이 늦는 거냐며 대표는 앞자리에 앉았다.

이로써 버뮤다 삼각지대에 나는 갇히게 되었다.

앞으로는 본부장과 대표, 옆으로는 파티션, 또 그 옆자리 의자에는 나와 상담하던 팀장이 서 있다.


계속 망설이다가 나는 물었다.

이걸 넣으면 안 돌려주시는 거 아니냐.

내가 만약 추후에 일이 생겨 못하게 되면 이 돈도 못 받을 텐데. (하기 싫다.)

그러자 대표는 그런 작은 돈이 대수겠냐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 돈 안 먹어요. 돌려줄게요.

그리고 나는 입금을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계약서가 우선이고, 구두 약속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허황된 것이었다는 것을.

계약금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해약할 수 있고, 이건 굉장히 유한 경우이며 계약금의 10%, 앗 그럼 30만원? 웃기지 마라. 계약금이 1500이면 그 10%를 더 내는 거다. 그러니까 그냥 송금한 순간 나는 이미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가끔 미쳐서 홀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기진맥진한 상태로 끌려들어간 분양사무소에서 3시간 동안 이 사람 저 사람 말 얹고 계속 해라, 해라, 안 하면 멍청한 거다, 왜 이 좋은 걸 모르냐, 이러면서 적당히 가스라이팅도 당하면. 여튼 그들의 던전에 들어간 순간 한 마리 호구가 되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거다.


뭐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주절거리고 있어?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느낀다.

이 당연한 걸 모르는 사람은 분명 나 말고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라, 이런저런 일에 직접 부딪혀 가면서 혼자 설 수 있게끔 되는 것. 우스갯소리로 인터넷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 청약통장의 중요성과 실비보험을 꼭 들어야 하는 이유, 각종 세금의 납세 방법 등에 대해 강의 해줬으면 좋겠다고. 배운 적 없으니 당연히 모른다. 필요해지면 그때야 배우게 된다.


날려버린 돈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 자신이 오롯이 내려놓기 위해, 또 이 글을 본 누군가가 역시 계약은 신중히 해야지 하고 다시 복기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나와 같은 상황에서 난처해하며 고민하는 차에 얻어걸린 이 글을 보고 성급하게 계약을 체결해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적고 있다.





6/13 전화로 계약철회를 요구했다.


왜 이렇게 늦게 전화를 했느냐고 하면, 첫째로는 300만원을 돌려준다는 대표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유튜브도 하고, 공영방송에도 나오고 어쨌든 본인이 유명한 사람이니 무슨 일이 생기면 댓글로 달아도 좋다는 식으로 호언장담했었다. 그 여유로운 얼굴을 보며 나는 300만원은 이 사람에게 푼돈이겠구나 하고 낼름 넘어갔었다.


둘째로는 집안에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돈을 끌어모아야 했다.

일단 와서 얘기하자고 담당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집안에 갑작스레 생긴 일 때문에 이곳저곳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6/14 점심시간이라 카톡을 남겼다.

갈 수 없을 것 같으니 전화로 좀 부탁드린다고. 그러자 팀장은 해약이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며 대표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아, 대표. 대표님. 대표님은 알고 계시지! 300만원을 돌려주겠다고 하셨지. 나는 기다렸다.


6/15

전화를 받지 않아 카톡을 남겼다. 어떻게 되었나요? 팀장은 아직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추후에 이 메시지를 삭제했다. 그리고는 와서 방법을 찾아봐요~ 라고 했다. 나는 좀 짜증이 났고, 철회를 강경하게 요구했다. 팀장은 답변하지 않았다.


시험을 치고, 집안 사정 탓에 이곳저곳 들리느라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혼자 가면 또 위압적인 상황에 놓일까봐 삼촌과 함께 분양사무소를 6/21이나 돼서 방문했다. 담당인 팀장은 없었고, 대표만 있었다.


대표는 기억 난다, 어려운 계약일 거라 생각은 했다. 이야기하며 돈 걱정은 하지 말라며 내 계좌번호를 받아 봉투 겉면에 쓰며 여유롭게 우리를 달랬다. 그러고는 해약은 담당자 소관이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단 말을 해놓겠다며 우리를 내보냈다.


봉투에 깜빡하고 스캔하느라 본 계약서를 안 가져왔던 탓에, 나는 계약서를 들고 재방문하기로 했다. 삼촌과 이야기해서 담당자인 팀장이 있을 때 재방문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카톡을 했다. 그런데?

팀장은... 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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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을 다르게 할까. 나는 여기서부터 기분이 상했다.

팀장에게 시간이 언제 되냐고 물어보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그 통화에서 나는 팀장에게 폭언을 들었다. 영상을 재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소리지르기 시작한다. 주의.


처음 통화를 시작했을 때는 둘 다 날카롭지 않았다.

그러나 팀장이 당신의 삼촌이 자신을 얼마나 사기꾼 취급하는지, 내가 언제 협박을 해서 하라고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삼촌에게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단지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그거 강박이잖아!'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내가 느낀 은근한 강요와 위압감의 정체가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칼을 들이밀었느냐, 죽인다고 했느냐 하는 팀장에게 그것만이 강박이 아니라고,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화가 많이 났었다. 언제든 취소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해놓고... 인터스텔라처럼 미래의 나가 과거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순진한 바보야, 그거 당연히 다 구라지!


팀장은 자신이 소리지르는 건 내 탓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대응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나를 자극했다.


소리 지르는 P시 A 트라움 분양사무소 직원


2분이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소리를 지르는 팀장에게 나는 소리 지르지 말라고, 계속해서 말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에게 나는 소리를 질러도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돈을 넣기 전에는 웃으며 나를 대하고, 어떻게든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쓰던 사람이, 화장실 가기 전과 다녀온 후 사람 마음이 다르다는 말처럼 달랐다. 나는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다. 그는 흥분해서 반말까지 했다. 내가 이러니 기분이 안 나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무서워서 손이 떨렸고,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는 그 통화를 고스란히 함께 옆에서 듣고 있었다.

생판 모르는 남자가, 딸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서 고객님이 기분 나쁘게 해서 소리를 질렀다, 고객님이 나를 자극해서 소리를 질렀다며 가스라이팅하는 걸 그대로 듣고 있었다.


내가 팀장에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근데 내일 어차피 계약서 때 뵙긴 해야 되는데 저는, 저는 그래도 일단 사무적인 것을 떠나서라도 뭔가 그래요. 이런 계약 쓰는 거는 진짜 사람 그런 걸 보고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걸 진짜 느끼는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인간적으로 큰 배신감이 느껴지네요.


통화는 모두 녹취했고, 이 녹취를 들려주자 팀장은 아주 교묘하게 편집을 잘했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화려한 기술은 갖지 못한 정직한 사람이다. 녹음길이와 통화 시작 시간은 엇비슷하다. 1초 정도 차이가 나려나? 아니면 3초? 본인이 원한다면 풀로 보내주겠으니 메일을 부르라고도 했지만... 그냥 계속 비꼬기만 하고 나를 자신의 자녀인 양 훈계하고, 조롱하고, 비꼬았다.


그리고 다음날,


팀장을 만나러 분양사무소로 갔다.


팀장은 내가 아닌 삼촌과만 이야기를 하려 했다. 참 웃긴 일이었다. 본인과 자신의 계약이라느니 어쩌느니 이야기를 해놓고서, 막상 계약자인 나와는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내 쪽은 아예 보지도 않고 삼촌 쪽으로 몸은 튼 채 이성적인 성인 남성과만 이야기하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그리고 삼촌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당신의 조카라는 사람이 얼마나 내게 무례했는지, 자신의 얼마나 감정이 상했는지 토로하는 것이었다. 계속 카톡을 보여주려 하고, 모르겠다. 나였으면 자신이 20대 어린 여성에게 소리를 지르는 녹취가 부끄러워 들려주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걸 또 삼촌에게 들려주며 이걸 편집했다고도 주장한다. 교묘하게 내가 잘랐다는 거다.


하지만 전체로 들어도,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

오히려 부끄러워야 할 것은 팀장이라 생각한다.


계약을 진행할 때 그들이 내게 계약 이야기만 한 게 아니다. 내 전공을 듣고 앞으로의 조언과 같은 사소한 이야기도 했었다. 나는 그걸 가만히 들어주고 있었다. 좋게 마무리하고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었다. 아니면 어떻게 아는가. 시간도 늦어가서 사람도 없는 마당에. 나는 그렇게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는데, 내가 인간적으로 배신감이 느껴진다느니, 실망스럽다고 이야기를 한 게 반쯤 눈이 뒤집힌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윽박지를 정도의 '자극'이던가? 애초에 팀장에게도 말했으나, 그 어떤 어른도 상대방에게 소리 지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팀장한테 맞았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방문했을 때, 팀장은 정말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허리까지 손이 올라갔다. 나는 너무 놀라 지금 절 치시려고 일어난 거냐 물었고 팀장은 비웃었다.


그 이유는, 내가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앞에도 물론 언쟁을 했다. 이것 역시 공개할 수 있다. 그가 계속 문제 해결이 아니라 감정 토로를 하려 하기에 나도 '자극'을 받았고, 그에 대해 반박하며 언쟁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고, 나는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또 소리를 지르고 있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하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고, 다가왔다. 손이 허리까지 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유리로 된 사무실 창밖으로도 보였는지, 본부장이 들어왔다.


삼촌은 내가 감정이 격해져 있으니 본부장과 계속 대화하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던 대표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게 본부장이었으니까. 나는 본부장을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원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뭐 이런 감정적인 것들 토로해서 뭐 하겠는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당연히 사람이라면 응당 태어날 때부터 부동산 법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뒀어야 했던 걸 2n살이나 쳐먹고 모르고 산 내가 죄라면 죄다. 본부장은 죄가 아니라고 했지만 죄 아니면 뭔데 벌을 받는가?


나는 본부장에게 겨우 겨우 물었다.

들으셨잖아요. 돌려준다고 하셨잖아요.

본부장은 말했다.

계약서 쓰게 하려면 뭔 얘기든 못하겠어요.


본부장은 5:5를 말했고, 삼촌은 거기서 좀 더 양보해달라며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내내 밖에서는 팀장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삼촌이 본부장에게 물었다.

보통 계약을 그렇게 3시간씩 걸려서 하느냐고.

본부장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재차 묻자 대답하지 못했다.


전날 돈 돌려준다고 말했던 대표와도 잠깐 나가서 얘기했다. 그러자 자기는 권한이 없단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권한도 없으면서 대체 왜 그렇게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얹었냐고 하자 내가 진상이라도 된 듯 그냥 계속 저리 가서 이야기하라고, 팀장이랑 얘기하라고 했다. 자신이 불리한 말에는 회피했다. 내가 전날 통화를 녹취한 사실도 알고 있고, 팀장이 소리지른 것도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도우려 하지 않았다. 내가 2분 내내 팀장이 소리를 질렀고, 지금도 지르고 있는데 무슨 대화가 되겠느냐고 말해도 저는 아무것도 못해요. 말했다.


그럼 도대체 왜 계신 건지, 왜 그때 말을 거든 건지 잘 모르겠다.


대표는 말했었다.

자신은 얼굴이 다 팔린 사람이고, 유튜브도 하고 텔레비전도 나오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밖에 나가서 쓰라고. 댓글 쓰든 뭘 하든 하라고.


만약 분양사무소에 들어간 사람이 있다면, 대표라고 말하는 사람의 여유로워 보이는 이런 말에 속지 않았으면 한다. 대표가 나서서 돈 돌려준다느니 얘기를 해도, 절대 절대 속지 마라. 본부장 말처럼 그냥 뭔 얘기든 못하겠나? 하는 마음으로 내뱉은 말이지 지킬 생각은 없다. 내가 그 증인이다. 대표를 믿지 말고, 본인의 판단을 믿고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당시에는 자책이 심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좋은 어른이었다면, 모아둔 돈이라고는 원룸 보증금밖에 없고, 수입원도 없는 20대에게 '영끌'해서 투자하라고 미친듯이 권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해서 거절한다면 보내줬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당연한 거다. 상대방이 자리를 박차고 매몰차게 떠나지 않아도 안 한다면 그냥 안녕히 가세요 하고 보내줘야 하는 게 맞는 거다.


브런치에 글을 안 쓴 지 벌써 1년이 지났는데 꼭 안 좋은 일만 생기면 글을 올리는 것 같다.

그간 변호사 몇 명과도 통화를 했고, 소비자보호원과도 통화를 했다. 법적으로 가게 되면 내가 불리할 거라고 변호사는 말했다. 한 푼도 못 돌려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최근에 재밌게 보는데, 그 드라마에서 민법 110조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법 조항을 들어 친구 동그라미의 아버지를 돕고자 했던 영우는 뜻밖에 난관을 마주한다. 법정에 선 증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영우는 시무룩해하며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녹음 파일이 있더라도 어쨌든 이를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 사실 소송 안 걸어봐서 모른다. 걸기 직전까지 갔었다.


강박은 뭘까?

요즘 시대에 팀장의 말마따나 '칼에 목을 들이대는' 그런 협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차원적이다. 법에 걸리는 걸 뻔히 아는데 몸소 나서서 이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위압감을 조성하고 그 사람이 나가지 못하게끔 하는 것도 나는 충분히 강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은 박차고 일어났는데 잡으면 그때부터 강박이라고 한다. 비싼 돈 주고 배웠다. 미리 좀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머리로만 알던 지식은 쓸모없는 거고, 실전은 전혀 다르다는 걸. 선수들에게 걸린 셈이다.


변호사 상담 비용으로 돈을 흥청망청 날리고, 혼자 속 쓰려하며 날아간 내 돈이 아까워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300만원이면 두 달치 월급인데 이걸 멍청하게 감언이설에 속아서 내가 내 돈으로 쏠랑 줘버렸구나. 내가 멍청했구나. 자책과 우울이 심했다.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결국 5:5로 마무리되어 150만원만 돌려받게 되었을 때에도 힘겨웠다.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주 내로 입금될 것이다.

기다렸다.

하지만 입금되지 않았다. 전화도 하기 싫어 카톡으로 말하자 답이 없었다.

결국 삼촌에게 물어봐달라고 부탁드렸다.

그제야 본부장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내가 진짜 고객이긴 했나? 헛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7월이 되어서야 돈을 받았다.


절반이라도 받은 게 어디냐, 150 그거 금방 번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 감사하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내 탓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 탓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다만 탓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서 이러는 것이다. 자기가 계약서 써놓고서 남 탓하고 있네! 라고 해도 그래요, 나는 남 탓할 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하기 싫다고 끝까지 말했다.


왜 일어나지 않았어? 박차고 가지 그랬어 라며 나를 탓하는 말도 많이 들었다.

건물은 2층이었고 나를 둘러싼 파티션과 남자 셋, 나는 그들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계단으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면 난간을 잡고 꾸역꾸역 내려가야 하니까.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잡힐 것도 까마득했다. 아니, 애초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내 체력 상태가 저질 중의 저질이었으니까. 한창 장을 보고 나온 뒤라 온몸이 지쳐 있어 의자에 푹 들어가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때 또 잡힌다면? 말을 건다면? 아줌마도 거절 못했던 내가 남자 셋을 제끼고 나올 수 있었을까? 돈 잃은 건 나니까 혹여라도 댓글로 내 탓은 하지 말아줬음 한다. 내가 바보 같다 생각하면 속으로 생각하면 된다. 굳이 남 상처 줄 필요 없이 나의 의견을 표출하는 또다른 방법 중 하나는 일기쓰기다.


요즘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150만원을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왔으니 운동에 그 정도 돈 쓰는 게 우습게 여겨졌다.

건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어서 그 어떤 자리든 내가 싫으면 싫다고 단호히 말하고 박찰 수 있고 싶다. 그러려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근육과 계단을 어영부영이라도 내려갈 근육이 필요하다. 장애 탓에 한계가 있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다.


시원한 사이다도 없고 그냥 정말 현실적인 글이다.


우리집에는 이때 받은 휴지가 아직 있는데 쓸 때마다 150만원짜리 휴지라고 말한다. 블랙코미디로 승화시킨 셈이다.


결론은,


1. 돈 없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면 함부로 묵돈을 끌어다가 투자 계약을 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당연하다)

2. 투자 계약이 하고 싶다면 계약을 권유하는 이들의 말에 넘어가 당장 할 게 아니라 돌아가서 한 번 생각해보고 하기를 권한다.

3. 만약 얼떨결에 했는데 철회하고 싶다면 14일 이내로 철회의사를 밝히고 내용증명을 보내라.

4. 애초에 마음 있는 거 아니면 들어가지 마라. 심적으로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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